[ Ex Libris는 책 소유자의 이름이나 문장을 넣어 책표지 안쪽에 붙이는 장서표라는 뜻의 라틴어로, 그 책의 소장자를 지칭할 때 쓰기도 한다.
예를들어 Ex Libris Livius라고 하면 "리비우스가 소장한 책에서"라는 의미이다. ]
여기까지 읽은 책에 대한 책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책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만큼 책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통통 튀는 것에다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만큼의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 올려져 있기 때문에.
얼마 전 읽은 책 소개 중에서 가장 따뜻했던 말
" 아내가 책을 끝내고 나면 천천히 읽어 볼 계획입니다. 참 고운 책을 만났습니다. "
여전히 꿈꾼다.
서로의 인생 최고의 책 두 권이 나란히 꽂힌 서재를.
동일한 책 두 권이 그대로 나란히 꽂혀서, 어떤 것을 읽을 까 고민할 수 있는 서재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그 속에 남길 작은 메시지를.
사랑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 책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패디먼가족만큼 많은 책을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책이 소유한 공간은 훨씬 가득할 것만 같은 내방은
침대 머리맡의 책. 침대 끝자락의 책. 스탠드 옆에 올려놓은 책. 신발장위의 책. 액세서리를 밀어놓고 테이블위에 쌓아놓은 책.
'서재 결혼 시키기'는 양장본중에서도 무거운. 왜 더 무거운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책이라서.
침대끝자락에서 읽었다.
설레는 구절이 나오면 앞에 앉아있던 동생에게 읽어 주었다. -동시에 다른 책을 읽고 있더라도 나는 굴하지 않고-
얘도 굴하지 않고 또 이 소규모 낭독회의 관객이 되어준다.
/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나는 지금 스탠퍼드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드에게 물었다.
"그애하고 잔 적은 없어. 하지만 비르길리우스한테는 홀딱 빠져서 그 책하고는 여러 번 같이 잤지."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비록 그 스코틀랜드인의 헌사만큼 눈부시진 않지만 그것하고 절대 바꾸지 않을 헌사는 조지 하우 콜트의 <자살의 수수께끼>속표지에 적힌 것이다. 나는 그 책하고 같이 잔 적은 없지만, 그 저자하고는 여러 번 같이 잤다. 그 헌사는 이렇다.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p.93
나의 남편 조지 하우 콜트와 나는 책으로 서로의 환심을 샀으며,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와도 결혼을 했다. 내가 양쪽에서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조지는 편집자다운 꼼꼼하고 지혜로운 눈으로 이 책의 모든 말을 살펴보았으며, 여기 적힌 말의 많은 부분에 영감을 주었고, 그랜드캐니언에서 책으로 가득찬 뉴욕시티의 우리집에서건 나와 함께 그 말을 겪어 왔다. 그가 나에게 보냈던 헌사를 접점 깊어지는 사랑으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p.218
그 친구의 친구가 몇 달 동안 실내 장식업자한테 집을 비려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모든 책이 색깔과 크기를 기준으로 재정리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 직후 실내 장식업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 때 식탁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사고가 인과응보라고 입을 모았다. p.20
우리 침대 옆에 있는 서가에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 "친구나 친척이 준 책". 먼저 그런 범주를 만들어 본 글쟁이 친구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한 군데 모아두니 따뜻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조지는 처음에는 떨떠름해 했다. 예를 들어 이름순에 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옆에서 쉬게 해 주었던 마크 헬프린을 미국 문학 정전에서 추방하여 여자 이름을 가명으로 16권의 <보모클럽>시리즈를 쓴 피터 레랑기스와 함께 재운다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결국은 마크와 피터가 서로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p.23
나는 여론조사에 응해 준 사람에게 우리가 1920년대에 살던 사람들보다 단어를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반으로 갈렸다. "적어도 그 때 사람들만큼은 아는 게 틀림없어"는 희극배우(0점)의 답. "인터넷에서 나오는 새 어휘만으로도 우리가 19세기 문학에서 잃어벌니 모든 것을 간단하게 메울 수 있을 거야."나는 이 생각에서 매우 불쾌한 냄새가 난다(Mephitic)고 생각했다. 극작가(1점)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조금 알지. 그리고 그나마 아는 것조차 그 때보다 덜 아름답고. 네 목록에 있는 단어들을 한번 소리내서 읽어 봐! 우리가 잃어버린 말들은 내적이고, 우리가 얻은 말들은 지시적이지. 나는 시에서 모뎀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p.38
오래 전 조지와 내가 아직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대충 그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우리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았다. 물론 선물은 책이었다. 조지는 내가 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회색 큰 곰의 전기>를 주었는데, 세번째 책장에 가서야 다음과 같은 헌사가 수줍게 자리잡고 있었다. 진정한 새 친구에게. 나는 그 헌사의 강조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해석하기만 하면 ('진정한 새 친구에게', '진정한 새 친구에게','진정한 새 친구에게') 갑자기 영원한 헌신의 고백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어떤 탈무드 학자도, 어떤 전시의 암호 판독가도, 어떤 해체주의 비평가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그 세 마디를 연구했다. p.85
그의 작품집<버티고 공원과 긴 이야기들>의 사인회에서 그는 서명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헌사를 적어주었다. "친애하는 독자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브룩실즈류에 대한 아이러니 섞인 경의의 표현), "쓸 시간이 없군요-인생은 더-". 그리고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으로, "서점에서 정가로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와 비교할 때 헌사를 달고도 헌책방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수ㅁ낳은 책들은 얼마나 우울한가. 그 각각이 배반당한 우정의 기록이라니. 배반자들은 자신의 배반이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그랬다면 안타깝게도 착각을 한 것이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배반을 목격하게 되는데, 가끔은 헌사를 쓴 사람이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쇼는 헌책방에서 "__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나드쇼가"라는 헌사가 적힌 자신의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책을 사서 그 사람에게 다시 보내면서 헌사에 한 줄을 보탰다. "새삼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지 버나드 쇼가." p.90
나는 한 가지 핵심적인 면에서는 매콜리보다 앞섰다. 매콜리는 그 대여행에 홀로 나섰기 때문에 리비우스의 망령 외에는 트라시메누스의 황홀경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랜드캐니언에서 나에게는 조지가 있었다.
물론 가장 사적인 낭독은 연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학시절 남자 친구의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어느 날 오후가 기억난다. 우리는 공부가 끝날 때까지 유혹을 미루기 위해 발을 상대의 머리쪽으로 가게 반대로 누운 채 <낭만주의 시인들>이라는 두꺼운 밤색 책을 주고 받으며 번갈아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를 낭독했다.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다. 7백 년 전 파올로와 그의 형수 프란체스카는 우리와 비슷한 짓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읽는 책 때문에 우리 눈이 자주 만났고
얼굴은 붉어졌다 창백해지곤 했어요.
호메로스의 시는 천천히 전개되어 나가는데 그것은 현대의 바쁜 뉴욕인들이 아니라 기원전 8세기 이오니아인들에게 맞추어진 속도이다. 따라서 시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우리 속도도 거기에 적응이 될 것이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우리 둘 다 너무 바빠 과연 호메로스를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호메로스를 읽지 않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생각을 한다. p.187
그러나 헌 책방에서는 책 하나 하나가 한 권뿐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의 창고에서 다시 갖다 놓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설혹 같은 책을 구한다 해도 소유자가 바뀔 때마다 쌓인 개성의 집합이 달라 시각적으로 원래의 책과 똑같을 수가 없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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