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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zia 2

가져온 카메라/Europe

by Simon_ 2026. 5. 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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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학교로 가는 길의 첫 다리

1.

베니스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어떻게든 방향만 정해서 향하면 되던 육지의 세계와는 다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걷다가도 골목 끝에 다리가 아닌 강물이 흐른다면 다시 왔던 골목으로 돌아와서 다리가 있는 골목으로 돌아가야 했다. 처음에는 내 방향감만 믿고 지도를 보지 않고 걸어다녔는데 한참 고생을 하고 나서는 지도에서 알려주는 골목을 최대한 따라갔다. 숙소 주변의 골목들을 속속들이 꿰차는 데에도 결국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학교로 향하는 매일 아침엔 8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Al canton이라는 카페에 갔다. 피스타치오 크로와상이 항상 제일 먼저 매진이 되는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못 먹을 수도 있었다. 주변이 대학가라서 대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전에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지내던 숙소도 엄밀히는 대학교 기숙사의 일부인데 교직원용인 듯 해보였다. 호텔처럼 수건이 비치되어 있고 주기적으로 청소도 해줬다. 지구 반대편에 와있고,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대학생때 2년 가까이 했던 기숙생활의 기억이 푸릇하게 떠오르는 곳이었다. 공용공간에는 헬스장과 스터디룸들이 있었는데 조별과제를 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밤 10시까지도 있었다. 노트북을 갖고 나와서 영화를 함께 보는 모습도 보인다. 그 당시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강의실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도 났다. 

 

베니스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은은한 바다 냄새가 났다. 버스를 타고 베니스 섬까지 들어오면 Piazza di roma에 도착하는데 바다 냄새가 훨씬 더 많이 났다. 그리고 골목골목 물이 계속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은은한 냄새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베니스에서의 가장 만족스러웠던 식사는  Gianni berengo gardin의 흑백사진전이 있던 베니스파운데이션 근처의 해산물 식당에서다. 점심시간을 지나서 다시 오라던 직원의 말에 근처의 식당에 갔는데 Gli spagetti allo scoglio라는 해산물파스타를 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과 운하를 마주보는 풍경으로 하는 식사는 아주 완벽했다. 얼음과 레몬조각을 동동 띄운 스프리츠도 함께. 

 

 

 

 

2번이나 커피를 마신 어학원 근처의 작은 카페
어학원이 있던 Margherita 광장.

 

2.

자동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는 베니스는 모든 것이 강을 통해 움직였다. Grande Canale를 향하던 당시의 palazzo들은 대문이 강쪽으로 나있다 육지에서 이런 건물들의 입구를 찾으려면 좁은 골목을 길게 걸어야 한다. 물가에는 배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동그란 고리가 박혀있는데 밧줄을 빠르고 부드럽게 두번 매듭짓는 동작들이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 계층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일을 하는 모습을 많이 마주했다. 건물 공사를 하더라도 sac de gravat가 한보따리 나오면 배에 실어야 하고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작품들이 배를 타고 오고 있었는데 그것도 결론적으로는 사람이 끌어올려야 했다. 인공지능과 정반대에 있을법한 일들이지만 인공지능이 절대 할 수 없을 일들.  

아마존과 Dhl도 배를 타고 배송되었고, 매일 아침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던 쓰레기를 치우는 아저씨들도 리어카에 쓰레기를 담아서 물가로 가면 배가 와서 리어카를 들어올리면 밑동이 열리면서 쓰레기가 쏟아졌다. 골목만이 문제가 아니고 다리를 건너려면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그에 특화된 리어카는 앞부분에 기둥이 튀어나와서 작은 보조바퀴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은 아니어 보인다. 

 

3.

관광객들을 쏟아내는 베니스의 입구에서도 인도계열로 보이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리어카로 캐리어를 운반해주는 서비스를 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이민자들 중에서 인도네시아의 비율이 유난히 높다고 알렉산드로가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오후산책들은 관광이라기보다는 역사와 건축공부에 가까웠는데 모피와 양모사업이 번창했던 시대들과 그 산업들의 협동조합 로고가 박힌 건물들을 보여줬고, 맨눈으로는 눈치채지도 못했을, 교회가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건물 전체를 들어올린 흔적을 알려주기도 했다.

전체 프로그램을 일주일이 아닌 2주를 있을걸 하는 후회가 잠깐 들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어 공부를 더 해서 다시 일주일을 보낸다면 더 효과적일 것도 같았다. 특히 알렉산드로와의 수준높은 내용들은 나중에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있을 것 같았다. 파리에 있으면서 이탈리아 팟캐스트라던지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으로도 사운드를 많이 접했었는데 실제로 사람이 내 앞에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흡수량이었다. 예를들면 알렉산드로가 말하는 걸 그저 팟캐스트로 들었다면 지쳐서 나가 떨어졌겠지만 눈 앞의 화자에게는 집중도가 훨씬 높아졌다.

 

Arsenale에서는 사자동상이 여러개 있었는데 프랑스사람들이 약탈해 갔다고 알려줬는데 설명을 같이 듣던 몇 몇 프랑스사람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프랑스 여권을 신청하지 않을 이유도 이런 뿌리의 정체성에 있다. 내가 10년, 20년을 넘게 프랑스에 살게 되더라도 프랑스의 역사가 내 조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것이고 하다못해 한국과 프랑스가 축구경기를 하더라도 한국에서 살기 싫어 이 먼 곳까지 왔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한국을 응원하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것이다.

 

 

 

곤돌라의 상징인 닻모양
어학원 근처에 있던, 아주 유명한 케이크 가게.
Campo Santa Margherita

 

 


*베니스의 근교  Chioggia

 

 

4.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날인 금요일엔 오전에는 어학원의 프로그램인 문화산책을 하고 Piazza di roma에 가서 Chioggia라는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신문가판대에 서있던 할아버지에게 80번 버스가 어디있는지 물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고 표지판 앞에서 서있던 시골아저씨들과 말을 하다가 젊은청년이 와서 버스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한시간만에 도착했다. 

아침 4시에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청소부로 일을 하고 내가 버스를 탄 시간인 1시25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자신의 또 다른 직업인 만화를 그린다고 했다. 그림들을 보여줬지만 취미에 그칠 정도의 수준이었다. 줄리앙처럼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에 심취해서 열정을 쏟는 것과도 비슷했는데 아마추어적이더라도 계속 어떤 꿈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자신을 증명해보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또다른 희망으로 기대는 것이기도 하고. 줄리앙이 잘난체를 하는 것보다 ‘나 못 알아들었으니까 다시 천천히 설명해봐‘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빌렐의 무해한 솔직함을 나는 더 근사하다고 느낀다. 

 

5.

Chioggia는 Piccola Venezia라는 수식어가 있다지만 전혀 베니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주문진에 온 것 같은 익숙한 고깃배들이 늘어져 있었다. 이탈리아는 낡은 고기잡이 배들조차도 루이지기리의 사진처럼 시적이다. 세시가 가까워진 애매한 점심시간이라서 바닷가 바로 앞에 있던 딱 마음에 들었던 식당도 서비스를 끝낸 상태였고 식사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Chioggia를 거의 한바퀴 돌고나서 음식이 나오는 식당을 드디어 만났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너무 팬시하지도 않고 해산물로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곳.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온 커플이 있었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여자는 나를 먼저 챙겨줬고 대화를 시작하다보니 나와 동갑인 것도 알게되었고 1시간 거리의 페라라에 사는 커플이었다. 직원이 몇명 테이블인지 물으니 한명, 두명이라고 대답했다가 그녀가 나보고 셋이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그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어를 썼다. 몰다브에서 온 내친구 일로나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깨끗한 해맑음을 품고있는 여자였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몸을 들썩거리는 사랑스러운 여자. 나는 봉골레를 시켰고 그들은 치케티를 먹었다. 스프리츠를 마셨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와는 다르게 종종 이 곳 식당에서는 각자 계산 불가 라는 팻말이 써있는데 귀찮은 것도 있겠지만 프랑스보다 훨씬 덜 개인주의적인 문화인 것도 같다. 남자친구가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더니 내 몫까지 계산했다. 다시 볼 확률이 낮은 낯선이에게 보여줬던 그런 관대함. 나도 그런 여유를 몸에 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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