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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디아스 _ 트러스트

甛蜜蜜/영혼의 방부제◆

by Simon_ 2025. 3. 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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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디아스 _ 트러스트

3부작의 파르텐자 시점이 되어서야 이야기가 고도로 흥미진진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영화 한 편 같은 고요하게 감동적인 서사. 서랍에 남은 편지같은 마지막4부의 의 밀드레드 베벨의 독백은 시적이기도 하고 존버거의 A가 X에게의 편지와도 닮았다. 따뜻한 욕조에서 읽었고, 침대에서 잠이 들기 전에 읽었던 책이다.  
 
 
헬렌은 늘 그랬듯 이 아첨꾼들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규모로 떠난 사람들은 그녀의 새로운 지인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세상을 넓혀주었던 작가와 음악가들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헬렌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조용한 내면의 피난처로 되돌아갔고, 과거의 외로운 습관인 독서와 일기 쓰기, 산책에서 위안을 얻었다. 과거에 그녀는 내면의 이런 공간이 광활하고 조화로운 우주처럼 평온하되 불가해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곳이 좁고 밋밋하게 보였다. 그녀의 독서회에 참석하고 콘서트를 열던 사람 중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함께, 한 집단으로서 그녀의 인생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외로움에 대한 취향을 잃었다. p.95
 
모든 인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삐걱거리다 멈추게 하는 소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다음번의 강력한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사건들의 결과로 혜택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그 사건들 사이의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처럼 결정적인 상황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늘 성공을 거둘 필요는 없다. 패배에도 위대한 영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어야 한다. p.201
 
앤드루 베벨의 얼굴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 내가 신문에서 너무도 여러 번 보았던 사진과 똑같은, 표정을 포기한 얼굴이었다. 그의 무표정을 따라 하며, 나는 그의 존재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척 했다.
“유감이네요.”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아서 놀랐다. p.269
 
나는 이 방 저 방을 오갔다. 이곳은 남편에게 “가정을 만들어준” 사람의 “부드럽고”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다. 연약한 어린 신부가 사는 곳이 아니었다. 집안의 나머지 공간과 대조를 이루는 이곳에는 수도원과 같은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현대적이고 진정으로 전위적이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몇몇 가구는 조용한 기능성에서 유래한 우아함을 띠고 있었다. 그 공간의 강렬함은 모든 사물이 (그리고 배치가) 논리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느낌에서 나왔다. p.383
 
수많은 이해관계와 당사자들이 돈에 묶여 있다. 부란 화강암 덩어리라기보다 수많은 지류와 갈래가 있는 강 유역에 가깝다. 쌓여만 가는 권리 주장과 관련자, 채권자, 투자자 들의 소송으로 베벨의 재산은 동결됐다. 그 재산의 엄청난 부분이 수십 년 동안 이처럼 법적으로 어중간한 상태로 남아 있다가, 1970년대 후반에야 정리가 되었다. 그 시기가 베벨의 저택을 마침내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개조가 시작된 때였다. p.411
 
간호사의 짙은 억양에 왠지 내 영어가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손을 좀 댈게요.” 일단 손을 대면 그녀는 적극적이다. 그녀의 손에는 목소리에 없는 권위가 있다. 이렇게 온순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이마를 아래팔에 대고 엎드린 채 간호사가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 어떤 변신을 하는 건 아닌가 궁금해한다.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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