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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엘리슨_ 완벽에 관하여

甛蜜蜜/영혼의 방부제◆

by Simon_ 2025. 6. 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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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포스팅에 최근에 인상깊었던 책이 아쉽게도 별로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책을 잊었을까? 아주 오랜만에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우면서도 동시에 너무 단숨에 읽어버리는 책이었다. 언젠가 뉴요커였는지 뉴욕타임스였는지 그의 작품 사진과 기사 한 편을 본 적이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있었다. 겉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내 일은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면을 봐도 좌절하지 않는다. 똑같은 작업은 한 번도 없고, 다음에 어떤 작업을 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이 지루할 수 있겠나. 죽을 때까지 해도 좋을 것 같다.” 

 

몇 년전 아뜰리에에서 같이 일하던 베르지니는 항상 우리는 이 직업으로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과 건전한 공유를 할 수 있는 것이 이 업계에서 순수하게 남아있는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질투심과 고자질, 정치질이 드글거리는 곳에서도 여전히 옷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 책은 설계 현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라 흥미진진하기도 했고, 마크 엘리슨이라는 사람은 현장에서만 있었지 글쓰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들이 단순하고 굉장히 직설적인 면이 있다. 그 마저도 그의 깔끔한 가치관과 직업정신으로 무장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제목도 참 아름답다. ‘완벽에 관하여’.      

 

 

 


 

대부분의 생명은 표면 아래에 숨어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에서는 한껏 팽팽해진 살 아래로 뼈대와 힘줄을 볼 수 있다. 조각 작품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에는 그가 해부를 통해 터득한 지식이 담겨 있다. 전문 사냥꾼은 사냥감을 몇 주간 걸어두거나 직접 잡으면 고기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안다. 예쁜 사진, 잘 가꾼 정원, 잘 차려진 식탁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 정말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잡지에 나올 법한 집을 지으려면 한동안 기름때와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한다. 전 세계의 광고주와 별볼일없는 인플루언서들은 끝도 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화려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는 길이라고 목이 쉬도록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우리가 걸친 암흑의 철갑을 뚫지 못한다.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실제 모습을 너무도 잘 안다. 궁전 같은 저택에 손님들이 감탄하면 자부심은 높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에게 사랑받는 보모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예를 배우거나 육체노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먼지나 흙 반죽이나 어두운 생각을 외면하면서 인생의 유의미한 순간을 지나쳐버리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보면, 완성품을 소유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30년 전이라면 이런 말을 감히 하지 못했을 테고, 할 말도 그다지 없었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니 살면서 배운 점을 나누고 싶다. p.11

 

새 계획이 기존 계획보다 훨씬 낫다는 확신을 모든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이럴 때면 나는 1~2주 정도 머리를 비운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해야 하는 압박이 크지만, 항상 그 문제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되 너무 직접적으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다 보면 어느 순간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 꽤 효과를 보곤 했다. p.20

 

석판이나 마루판 접합부는 느릅나무 합판의 이음새와 정확하게 맞췄다. (...) 

그런 장소를 도면으로 그리는 것은 간단하다. 모든 직사각형의 모서리가 서로 겹치지 않게 배열하면 짠,하고 도면이 완성된다. 하지만 공사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현실적인 도면으로 건물을 완성하는 방법은 앞에서 뒤로,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모든 위치에 모든 요소를 정확히 제자리에 놓는 것뿐이다. 이는 서로 다른 자재가 만나는 지점, 이를테면 나무로 된 부분이 유리창과 맞닿는 지점 같은 데서 모든 요소를 밀리미터의 둘째자리까지 계산해서 정확하게 도면을 그리고, 자재를 재단하고, 시공해야 한다. 유리창, 창틀, 창대돌 및 나무 자재를 각기 다른 곳에서 만들어도 안 된다. 이런 제작소는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의 제작소에서 네 명의 설치 담당자를 보내겠지만, 까다로운 설계 의도를 전혀 모를 것이다. p.38

 

안목이 세련되고 눈썰미가 좋은 데다 품위 있게 행동했다. 한마디로 전문가 수준의 안목이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들처럼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칭찬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고마운 마음에 공사에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을 두 배로 늘렸다. p.150

 

하지만 설계팀은 이 자재를 고집했고, 결국 내가 계단 몇 칸 높이로 실물 크기 모형을 만들어서 테스트했다. 결과가 선했지만, 회의실에는 내 생각을 지지해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일은 보수를 상당히 많이 받는다. “이 분야에서 제가 오래 일했는데, 이건 불가능한 작업입니다”라고 말하면 한 푼도 벌 수 없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실패할 거라는 나의 확신을 입증하느라 의뢰인이 수만 달러를 쓰게 하는 편을 전적으로 선호한다. 나도 이런 거래를 할 때 죄책감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의뢰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면 죄책감을 이겨내기가 매우 힘들다. p.173

 

 

하지만 거액을 내고 명문대 졸업장을 따낸 사람들에게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졸업과 동시에 성공가도를 달리는데, 리더나 감독자의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지만 정작 자기가 지시하는 일을 직접 해본 경험은 전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계단을 설계한 사람도 아마 새장조차 직접 만들어보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사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라든가 그와 비슷한 솔직한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태도야말로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가장 큰 걸림돌이다. p.178

 

‘후회 조금’과 ‘2주의 시간, 크레인 한 대 그리고 2만 5천달러’ 사이에는 심리적인 차이가 매우 크다.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한 지 15년이 흘렀지만, 나를 포함해 우리 팀의 인부 중 누구도 그라인더를 함부로 사용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는 유리 근처에서 그라인더를 사용할 때 특히 조심하라고, 필름이나 보호용 플라스틱으로 유리를 잘 덮으라고 25번 이상 당부했다. 첫 번째 실수에서 후회라는 ‘느낌’이 남았지만, 그라인더를 사용할 때 유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 번째 실수로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그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이런 교훈은 어느 대학에서도 배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해’라는 것이다. p.180

 

올랜도는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여유로워 보였다. 불필요한 동작은 전혀 없었으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생각하거나 계산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요리하는 과정만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릴에서 음식이 익는 동안에는 필요한 물품을 다시 채우고 주방 이곳저곳을 깨끗이 닦거나 접시를 세팅하고 완성된 요리를 장식할 간단한 가니시를 준비했다.

내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간단한 오믈렛을 만들 수 있지만, 이 남자는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한 편의 교향곡을 연주하듯 아주 능숙하게 요리해냈다. 식당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노라면 그동안 돈을 내고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올랜도는 나에게 일의 잠재력과 숙달된 동작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p.198

 

 

대리인은 번지르르한 말과 행동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오히려 나의 무심한 태도를 좋게 평가했으며 금세 경계를 풀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존중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p.214

 

그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일했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어볼 기회가 생길 때 선뜻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 항상 놀란다. 달리 말하면, 가장 흥미롭지만 까다로운 프로젝트는 “제가 해볼게요”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언제나 기회가 주어진다.

(…)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능숙해지기를 원하며, 놀라워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 때문에 몇 날 몇 주를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트레스로 불편한 속을 견뎌야 하더라도, 그 정도 희생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일을 망치면 그 결과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과의나 전문 댄서와 달리, 목공 일을 하다가 생기는 실수는 만회할 기회가 있다. 목수는 자기가 만든 것에 미흡한 면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 끝난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미흡한 점부터 생각난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포기한 어려운 작업을 해낼 방법을 찾아내면 큰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낀다. p.239

 

 

하지만 돈 계산에 서툰 나는 속으로 ‘오, 남는 돈이다’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기술자들은 부족한 사업 수완을 낙관적인 사고로 대충 때우는 경향이 있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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