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해보다 특별한 생일날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앞자리의 숫자가 바뀌는 생일엔 사람들을 모아서 큰 파티를 열곤 한다. 나는 생일날 파티를 열어서 주인공이 되는것에 그다지 감흥이 없기도 하고 생각만해도 피곤해졌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올해는 뭔가 특별한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나에게주는 선물로 명품백이 아닌 집을 선사했고, 커리어적으로도 큰 전환이 있었다. 그래도 생일 당일에는 오래전부터 눈여겨두었던 고급 식당을 가려고 했는데 예약이 꽉차서 결국 태국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그래도 그 마저도 좋을만큼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6월 21일에는 일로나는 콘서트 티켓을 선물했고,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커다란 콘서트장에 들어가봤다. 학창시절부터 들었던, 아는 노래가 많았던 핑크의 공연이었다. 머리카락을 핑크색으로 염색하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 티셔츠를 핑크색으로 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얼떨결에 아침에 문자를 받고 콘서트에 가게 된 나는 아무런 준비도 못했지만 빼곡히 콘서트장을 메운 사람들과 지금까지 들어본 스피커 중에서 최고의 음질로 소리가 가득찬 공연장을 잊을 수 없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둔 것조차 그어떤 영상보다도 완벽에 가까운 웅장한 소리가 난다.
뉴스에서 본 숫자로는 4만명이 모였다는 공연이 끝나고 어떻게 빠져나갈지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지하철에는 어떻게 휩쓸려 올라탈 것이며.. 그런데 막바지에 다다를쯤 발라드가 나오고 있는데 일로나가 툭툭 치더니 ‘우리 이제 나갈까?’ 했다. 웬만한 유명한 노래는 다 들었겠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공연장 밖으로 슬그머니 나왔는데 보안직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며 인파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합경기장처럼 원형으로 커브진 아주 넓은 공연장 밖에 둘만 나왔다. 초여름의 태연하고 선선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이 싱그러운 기분이 어쩌면 제일 좋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서로 팔짱을 끼고 So What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까지 걸었다. ‘우리 아무래도 공연 중에 So What은 못 들은 것 같은데? 제일 마지막에 하려는 노래이지 않을까? 아무렴 어때.”
더 깜짝놀랄 선물로는 제시카가 뉴욕에서 나를 보러 오기로 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것인데 갑자기 항공권을 둘러봤다더니 어젯밤 나에게 티켓을 보내고, 회사에 휴가를 컨펌받고 조금 전에 확정이 되었다. 익숙한 레터링인 JFK - CDG이 적힌 항공권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자기도 이렇게 갑자기 티켓을 끊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엄마아빠가 파리에 놀러왔을 때처럼 설렌다. 파리 근교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갈까도 했는데 파리에서 센강에 걸터앉아 와인만 마셔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6월은 아름다운 작약의 계절이다.
우연히 지나친 엘피매장에서 종교처럼 니나시몬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떤 한주는 매일매일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속재료를 모두 준비해뒀다가 아침에 밥을 짓고 김밥을 말아서 출근을 했다. 금요일에는 속재료가 떨어져 계란만 남아있거나 했지만. 그 어떤 요리보다 훨씬 소중했던 나의 김밥.
'Rue du chat qui pêche' 생선을 낚는 고양이의 길. 실제로 5구의 라틴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골목의 이름이다.
타쿠야가 사온 후카이도의 단팥쨈. 아뜰리에에 가서 일본인인 모모코에게 이것의 정체와 레시피를 물어봤고, 혼자서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친구 타쿠야가 파리에 왔다. 거의 2주 동안은 우리집에 있었는데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타쿠야가 피에르를 더 따라다니기도 해서 있는듯 없는듯 시간이 흘렀다. 3년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예전과 다름없었다. 어느 주말엔 모르간이 타쿠야와 다같이 대화할때 영어를 못알아들어서 내가 중간에 불어로 번역해줬는데 ‘나 뭐라하는지 하나도 이해 못했어’ 라고 당당하게 물어본 것도 너무 귀여웠다. 그녀의 예비신랑이 못보도록 모르간이 내 방에 와서 몰래 웨딩드레스의 피팅 사진을 보여줬다. 11월에는 그들의 결혼식인데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피에르의 +1으로 가는거긴 하지만 적어도 몇년은 본 커플이라 들뜬다. 게다가 결혼식은 숲속에서 산장을 빌려서 한다고 했다.
여름밤 마리옹과 굉장히 맛이없었던 샹그리아를 마시고 헤어지기 아쉬워 강가에 앉아서 수다를 떨던 밤. 강둑에서 위로 올라오는 계단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었다. 여름하늘의 빛깔과 흐드러지는 나뭇잎.
피에르 생일날 스테이크를 먹고 처음 지나간 골목에서 발견한 액자아뜰리에. 액자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곳인데 허름한 외관에 비해서 가게의 문 손잡이나 액자틀로 창문을 장식하고, 상단에 조명을 달아둔 모습이 재미있었다. 'Toutes les comparaisons sont à l'avantage de notre Maison' 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도도한 문장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어떤 비교는 우리 가게를 더욱 빛나게 한답니다' 이런 뉘앙스인데 굉장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치과예약이 있어서 15구에 가는길에 좋아하는 화분들을 몇개 사왔다. 저렴하고 이태리 지중해 느낌이 나는 밝은 흙의 화분. 결국엔 그 먼곳에서 흙까지 사와서 대대적으로 분갈이를 했다.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열쇠복사집. 우리집의 열쇠를 복사하려고 들렀다.
뉴질랜드에서 엘로디가 보내온 엽서. 프랑스인들은 휴가에 가면 엽서를 많이 쓰는데 이렇게 받아보니 또 애틋하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어떤 풍경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서, 편지봉투도 없이 달랑 종이 엽서가 여기까지 잘 도착한 것도. 주소를 적고나면 얼마 되지도 않는 공간에 몇 문장밖에 안 쓰여져 있지만, 그마저도 펜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그 시간동안 나를 생각했을 그런 마음에.
퐁피두의 영구전시에서 지나치다가 본 르코르뷔지에의 가구셋팅. 지흔이가 선물해준 파우치
처음으로 먹어본 튀니지의 요리. 왼쪽 음식은 고춧가루 양념에 생선을 졸인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 쿠스쿠스와 비슷한 양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메르메스라고 불렀다. 에르메스와 발음이 비슷해서 아직도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장바구니에 층이 나뉘어져 있어서 체리나 토마토 같은 것들이 터지지 않게 정돈된, 어떤 할아버지의 장바구니.
처음으로 해물탕을 직접 해보려고 서양무와 허브등을 샀지만 실패. 내가 너무 아끼는 마스킹테이프들의 컬렉션. 뭐니뭐니해도 mt사의 단조롭지만 센스있는 디자인이 최고다.
퇴사를 앞두고 며칠전에 로맨틱한 출근길을 새로 개척했다. 7호선을 타고 센강을 건너 간 다음에 자전거를 이어서 타고 아뜰리에까지 가는건데 선선한 아침온도와 햇살아래에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었다. 이 동네의 길은 훤하게 알아서 지도를 보지 않고도 어떤 골목으로 빠져서 가던지 도착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
출근하는 마지막 주에 받은 선물들. 태국의 전통 테이블보, 립스틱. 토요일에 출근할때면 건물의 문이 자동으로 잠기기 때문에 누군가는 항상 대왕 솔방울을 가져와서 문틈 사이에 끼워놓는다.
퇴사할 때 데보라가 선물해 준 꽃다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깜짝 놀랐다. 데보라가 있어서 그동안 정말 다행이었다. 한동안 몇 번을 똑같은 셋트로 입고 다녔던 면접룩이다. 필립림의 플랫, 이자벨마랑 옴므의 트렌치, 디올의 와이드 팬츠. 흰티셔츠. 진지하게 보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런 분위기의 룩이었다.
일요일의 생투앙벼룩시장. 몇년 전에 마지막으로 와보고 아주 오랜만에 와본 동네다. 그때도 미처 다 못보고 문닫는 시간이 되어서 급하게 쫓겨나듯이 나온 것 같은데.. 구글맵에 언젠가 표시해둔 카페를 가보기 위해서 동네의 깊숙히까지 더 걸어들어갔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벼룩시장은 그곳의 10프로도 안되는 규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동네 전체가 벼룩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와 건물양식이 좀 달라서 휴양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분위기였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온 것 같기도 하고, 멜버른의 어느 동네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프랑스 남부의 어느 시골마을에 와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쨋거나 이날도 2시에 도착했지만 절반도 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동그란 알이 움직이는 귀걸이를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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