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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3. 7. 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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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의 3주정도 우리집에서 지내던 타쿠야가 얼마전에 떠났다. 밥그릇을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밥알을 쓸어담아 마시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전혀 다른 일이기는 하지만 일본사람들이 면을 후루룩 소리를 내고 먹는 것이 예의라고 하는 문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제시카가 있는 동안에는 관광지를 구경다니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벼룩시장에 데려가기도 했다. 레스토랑에 자주 갈 줄 알았는데 집에서 식사할 일이 더 많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장을 잔뜩 봐두는 건데. 회사 근처에서 만나서 잠깐 들렀던 도자기 팝업스토어에서 집들이 선물이라며 내가 고른 그릇들을 전부 사줬다. 근처의 바에서 와인을 마시는데 아쉽게도 접시 하나가 깨지긴 했지만. 실내에 앉았지만 테라스에 있는 것처럼 탁트인 바에서 화이트와인, 레드와인을 골고루 시켜서 마시고 집에 와서 떡볶이를 먹었다. 뉴욕에서 같이 샀던 닐리로탄 티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탄 사진을 보고 나도 아침부터 닐니로탄의 티셔츠를 맞춰서 입고 나갔다. 침대에 누워서 제시카에게는 한국어로 말을 계속 했고, 동시에 피에르에게는 불어로 말을 했는데 이 둘 서로의 외국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전제조건이 흥미로웠다. 자신에게 하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고, 옆에 있지만 다른사람에게 하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재밌는 상황은 아뜰리에에서 디자이너들은 영어권 사용자라 그들은 영어로 계속 말을 하고 프랑스인들은 그 영어를 듣고 자신들이 할 말은 계속 불어로 했다. 나는 영어가 편했지만 이제는 불어는 더 익숙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국인끼리 있을 때에 영어로 말을 하는게 낯간지럽고 잘 나오지 않는 것처럼 프랑스사람들이 많으면 불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C'est un peu évasé. Slightly. 이런식으로.  

 

2.

아침에 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카페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양복을 갖춰입고 광나는 구두를 신은 중년들. 이른시간부터 시내구경을 하러 가족단위의 유럽계 관광객들. 두 세명씩 무리로 와서 에스프레소를 빠르게 들이키고 공사현장으로 돌아가는 남자들. 하얀색 셔츠를 입은 웨이터는 이제는 나에게 따로 묻지도 않고 커피를 바로 내줬다. 그는 언제나 커피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나서는 잔의 손잡이를 내기준으로 오른쪽에 오도록 살짝 돌려놓았다.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책을 읽으면서 시작하는 아침이 주는 잔잔한 상쾌함. 

그토록 갖고싶던 영화관 회원권을 끊어놓고 나니 요즘은 클라이밍보다 영화관에 더 자주 간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본 영화는 Lovelife, Les filles d'Olfa, Les algues vertes. 오히려 기대했던 Olfa 빼고 전부 다 좋았다. Lovelife에서 주인공의 자식이 죽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슬픔이 스쳐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면에 전남편이 와서 함께 현실에 분노하는 부분에서 주인공은 감동을 받는다. 그녀는 상실에 침몰해 갈때 주변의 무관심은 더 담담하고 잔인하게 드러났다.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의 위로가 가장 최선일까. 전남편이 한국인이라서 영화의 씬은 한국으로 갑자기 순간 이동하게 되면서 영화도 같이 산으로 가버려서 조금 황당했지만, 그래도 그것 빼고는 영화는 좋았다. Les algues vertes는 배경지식 없이 보게 된 영화인데 영화 전반에서 이어지는 저널리즘에 대한 직업정신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브르타뉴 지방의 예민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는 사태까지 와있는데도 나는 이번에 처음알게 된 사실이었다. 온 국가가 쉬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영화의 주인공 역할인 기자가 실제로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 

 

 

 

 

 

한국에서부터 선물받은 도시락통을 감싸는 도자기. 파리에서 본 아기옷가게중에 제일 귀여운 곳이었다. 원단과 모티프 전부 제작하는 것 같았다. 몽마르트 올라가는 길에. 


레드컬러가 예뻐서 가격을 흥정해서 25유로에 사온 서류정리함. 이날은 안경을 2개나 샀다. 프레임의 모양보다도 그냥 플라스틱이 아니라 굉장히 특이한 소재였다. Jura의 공방에서 만들어졌다고 함.  
워커 에반스의 책.
오래된 토스트기.

 

플로르가 여행을 마치고 사다준 선물. 
다른 건물보다도 눈에띄게 아름다웠던 곳. 1층의 문과 창문을 따라 커브의 몰딩도 섬세했고, 테라스의 장식도.


내가 좋아하는 로맹가리의 Gros calin의 이름을 단 서점. 
야외에 노출되는 부분의 페인트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창문을 우리가 셀프로 보수하면서 필요한 재료들을 토요일에 사와서 그 다음날인 일요일엔 하루종일 창틀을 사포질 했다. 꼼꼼하게 마감하려면 준비하고 다듬고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다. 봉제하는 과정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큰땀으로 박아서 미리 다림질하거나 시접을 잘 잘라서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것처럼. 파리시내를 걸어다니면 우리집처럼 오래된 창문을 보존한 집들에 계속 눈이 갔다.    


16년도에 나의 첫 인턴시절 회사에서 샘플세일로 산 블라우스. 디올 반바지.


알리스의 아기를 볼겸 도시를 벗어나 바람도 쐴겸, 지난주 주말에는 알리스의 집에 갔다. 고양이에게 한국말을 혼자 하던 것처럼 아기에게는 자동으로 한국말이 계속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내친구가 품고있던 생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게, 아직도 주변의 임신과 출산이 낯설다.   

 

지방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후하게 비스켓도 줬다. 파리에서 2.5유로 내고 마시는 커피를 지방에서는 1.5유로. 한국으로치면 읍면리의 가장 작은 단위에 비할 그런 시골동네가 알리스네 집이 있는 곳이다. 그런 시골에서 나 혼자 마실을 다니면 그들은 아시아 사람을 처음보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마을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악의없는 그런 호기심이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앙부와즈 도시에 있는 성.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에 와서 생을 마감했다는 도시다. 그의 집이 있는 다른 커다란 성은 옆에 있었는데 이번엔 여유가 없어서 못갔고, 대신에 앙부와즈 시내에 있는 성에 갔는데 언덕 위에서 마을 전체를 조명할 수 있고, 한편엔 강물이 흘렀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강줄기의 바람이 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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