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은 차분히 노트북켜고 글 쓸 시간도 없이 지나갔다. 이말은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그저 흘려보낸 것과도 같은데 그도 그럴것이 컬렉션 동안에 2주 연속으로 토,일에 출근하고 집에와서는 넷플릭스나 잠깐 보다가 지쳐 잠들었다. 하필 컬렉션시즌에 이삿날이 겹쳐서 거의 피에르가 혼자 6층을 오르고 내리면서 이삿짐을 옮겼고 나는 마지막에 집계약날에 사인만 하고 조금 도왔다. 전 집주인인 스똑로자 아저씨는 예술계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서 괴짜같은 성향이 있기도 했는데 피에르가 말하길 나랑 똑 닮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스똑로자 아저씨는 30년 전에 자신이 이 집을 살 때 전 주인으로 받았던 라디에이터의 물흐름을 조여주는 열쇠같은 쥐꼬리모양의 쇳덩이를 종이 편지봉투조차 그대로 갖고 있다가 (그래서 봉투의 앞면에는 Pour Stok, 뒷면에는 Pour Pierre로 적혀있음) 우리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이걸 먼저 발견한 피에르는 누가 편지봉투조차 계속 갖고 있었겠냐는 질문을 던지며 너도 그럴것 같다라며 대답을 했다. 스똑로자의 만행은 지하창고에서도 계속되었는데 프랑스의 집 구조상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꺄브는 전부 지하에 각자 1-2평 남짓한 칸이 나눠져 있다. 유일하게 우리꺄브에만 전기선이 들어와 전등을 켤 수 있었는데 그 전기선의 유래를 쫓아보니 공용으로 복도에서 써야하는 전기선을 끌고와서 자기 꺄브 안에다가 붙여놓은 것이었다. 이 꺄브 안에서는 스똑로자 전의 집주인의 것이었을 게 분명한 와인병을 진열해 놓는 철제 꺄브가 한쪽에 놓아있었는데 이것도 깨끗하게 닦아서 우리가 써야지. 이 볼품없는 철제꺄브는 길거리에 있었으면 주워오지도 않았겠지만 어쩐지 이 집에 오래전부터 속해있었다니 계속 놔두고 쓰고 싶어졌다.
집계약이 끝나고도 주말에 출근하느라 집에 있어본 적이 없었지만 어제는 총파업 덕분에 수업도 취소되었고 퇴근도 일찍해서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택시를 탔다. 우리동네에 와서 소소하게 피에르와 함께 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마트에서 버터와 우유를 사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이제야 이사온 것이 실감이 났다.
2.
엘로디가 주고간 노르망디지역 특산품. 꿀은 이사하는 동안 아직 열어보지 못했다. 저 버터쿠키가 정말 맛있었는데,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다음에 노르망디에 엘로디네 집에 놀러가면 많이 사와야지.
3.
점심으로 종종 얻어먹었던 팟타이. 식당에서 사먹는 팟타이의 소스맛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만들어 먹는 그런 소스인데 내가 아는 팟타이소스보다 덜 달짝지근하고 간장에 더 가까운 맛이다. 패턴지에 대충 휘뚜루 감아서 테이프를 붙이고 내 이름을 yon으로 끝나는 스펠링으로 아무렇게나 포스트잇에 휘갈겨 준 그런 한끼. 이사하면서 여기저기서 나온 한국 마스크를 어느날 그에게 한아름 안겨줬고 와이프가 너무 고마워한다고 전해줬다. 그러고 며칠 뒤에 또 한번 더 팟타이를 받았다.
4.
나는 주말에 출근하느라 마지막으로 우리집을 반납하는 날(?)인 에따데리우에도 못갔는데 그 집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베트남의 집도 가끔 사진을 보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꼭 드는 건 아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제한때문에 오히려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과거의 나도 없고 장소도 없는 그런 초월적인 곳. 그곳의 여름나라의 날씨 덕분에 넓은 거실에 햇빛이 끝없이 쏟아지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아니면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만 사진으로 남겼기 때문에 그 사진들의 이미지가 축적되어 그렇게 인식되는 것도 아닐까 이상한 추측을 해본다. 파리에 처음 도착한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에 집도 구하지 못하고 한달동안 머물었던 에어비앤비의 집에서 찍은 사진은 한장도 없으니까.
지금의 새집은 새집이라 하기엔 공사가 많이 남았지만 그때의 조촐한 에어비앤비에서 임시로 살았을 때에 비하면 지금의 불편함 정도야 비할데가 아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가스레인지 연결을 못해서 밥솥으로만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데 어찌저찌 살아진다. 가령이가 가져다 준 오징어젓갈과 명란젓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질리지 않고 끼니를 해결 할 수 있고, 피에르는 쌀밥에 프랑스 소시쏭을 곁들어 먹었다. 덕분에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도 했고, 밥솥에 국수를 데워먹기도 했다.
사람의 기억력은 믿을 것이 못되어서 여러 이삿짐 박스에 어떤것들이 들어있는지 며칠만에 금세 잊어버렸다. 새집에 도착한 첫날 향초를 찾으려고 박스를 다섯개나 열어보고 결국 발견한 곳은 카메라와 함께 아끼는 물건들과 함께있었다. 책장의 책을 작가별로, 그러나 무게를 적당히 맞춰서 무거운 것과 가벼운 poche책을 섞어서 박스를 꾸렸는데 공사가 끝나서 책장에 정리하기 전까지는 열어볼 엄두가 나질 않고, 그전까지는 새로운 책들을 계속 사서 읽을 요령이다.
5.
이 일본영화는 15구에 있을 때 본 영화인데 지하철에서 지나치며 광고이미지를 봤을 때에는 영화관에 보러갈 생각은 안들었는데 피에르가 보고싶어했고 마침 빠떼에 티켓이 남아있어서 보러가게 되었다.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넣어둔 장례식장의 위트있는 마무리는 너무 가슴설렜다. 영화를 보는동안, 보고나서 남아있는 나비의 부드러운 날갯짓같은 그런 숨결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맞닿뜨리는 분노의 순간들에도 조금 침착하게 가라앉히라는 안정제를 놓아주는 것 같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해소법을 알려주는 위기의 노트가 있다면 영화를 보러 가거나 고급디저트를 먹는 것이 나란히 있을 것이다. 2월 즈음의 어떤 주에는 세번이나 영화관에 갔다온 걸 깨달았다.
6.
점심을 못가져 온 날. 근처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양이 많아서 오후내내 불편했다. 고구마를 먹으려고 가져온 날 아껴뒀던 컵라면을 꺼내서 먹었다. 한국이었으면 컵라면 하나는 다 못먹는데 프랑스에서는 언젠가부터 귀한 라면이라 항상 다 먹게 된다. 도시락통을 올려두는 다리미 스팀통. 내 조그만 호일을 올려놓으면 다림질 하는 아저씨들이 본인들 식사하러 가져가고나서 내 점심이 들어있는 호일도 통 안에다가 넣어놔 준다. 어렸을 때 교실에 있던 난로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두시간정도 데우면 고구마나 생선구이가 좀 따뜻해졌다.
7.
항상 마음씀씀이나 손이 컸던 가령이. 내가 먹고싶다던 젓갈을 네통이나 사왔다. 무거워서 깜짝 놀랬다.
8.
총파업 때문에 퇴근을 좀 일찍 한 날. 집에 들어가기도 아쉬워서 마레쪽으로 걷다가 좋아하는 샵에서 일로나가 딱 맘에들 법한 생일선물도 즉흥적으로 사고 퐁피두에 갔다. 가볍게 세르쥬갱스부르 전시가 도서관에 있어서 도서관에 처음들어가보기도 했고, 원래 그 건물로 빠지면 다시 퐁피두 뮤지엄으로는 못들어오는데 뮤지엄 꽁씬에 가방이 있다고 하면서 애절한 눈빛을 보내니 문지기 아저씨가 윙크하고 목을 까딱하면서 빨리 지나가라고 해서 본 건물로 돌아왔다. 파리의 더 아름다운 도서관들에 비하면 한국의 대학 도서관 같은 곳이었지만 열람실에는 빽빽하게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허둥지둥 퇴근하고 온터라 나도 학생들 틈을 타서 자판기에서 커피한잔 뽑아서 들이키고 왔다. 상설전으로는 Raza의 페인팅을 보러갔는데 최신작들보다는 오랑주리의 세대들의 분위기가 나는 초기작들이 나는 어쩐지 더 마음이 동했다. 파스텔컬러의 유화에 담긴 인도의 풍경. 그시대의 서양의 풍경만 그런 형식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다가 인도의 모습을 보니 신선하고 아름다웠달까.
15구의 우리집 근처의 골목에 있는 어느 책 수선가의 작업실이다. 40년도 더 전에 받은 디쁠롬이 여전히 자랑스럽게 걸려있고 지긋하게 나이드신 할머니가 늦은시간까지 계속 작업하는 뒷모습이 근사했다. 장인들의 아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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