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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오케스트라가 너무 좋아서 이 감상이 머리를 떠나기 전에, 가슴에 더 오래 남도록 글로 적어놓고 싶었다. The Met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파리에 와서 하는 공연이었는데 몇달전에 지하철에서 광고를 보고 티켓을 예매해뒀다. 캘린더에만 표시해두고 잊어버리고 살고있었는데 이렇게 그날이 찾아왔다. Pantin이라는 파리 북쪽 외곽을 뚫고지나서 위치한 곳인데 Cité de la musique과 함께 Philhamonie de Paris가 나란히 있는 곳이었다. 비범한 건축물부터 웅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우주선을 타듯이 중심부로 올라가게 되는데 전혀 생긴 외양은 다르지만 로스앤젤레스의 더브로드와 비슷한 인상을 줬다. 파코라반의 메탈드레스같기도 한 건물의 몸통이다.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있는데 커브에 따라서 모든 부위의 격자무늬 규격이 달라지는 것도 하나의 디자인적 요소가 되었다. 이런건 어떻게 제작하는지 궁금하다
내부도 커브진 좌석들이 잘 어우러져서 이 장소는 오로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는 듯 했다. 작업하다가 가져온 허리벨트에 바늘을 끼워서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는데 연주자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 리허설을 하는 순간들이 지나고 지휘자가 나왔다. 여전히 내손가락은 허리벨트를 뒤집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연주가 시작되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소리였다.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로 오케스트라를 찾아서 들어보려 했는데 전혀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도입부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도 같았다. 중간에 한번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도 두 시간 동안 연주가 이어졌는데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최근에 실망하면서 본 웨스앤더슨의 영화보다도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시간이 더 쏜살같이 지나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를 들었던 건 7년 전 쯤 프랑크푸르트에서 쇼스타코비치 연주였는데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은 탓일까. 그때보다 다른사람이 된걸까.
커다란 빨간색 하프가 두개 놓여져 있었다. 지금까지 하프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연주에 섞이자 단번에 하프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중간에 오페라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부분은 별로였지만 숲속의 상쾌한 기분을 주는 밝은 소리들도 좋았고, 마지막으로 가서 짙고 빠르게 나오는 웅장함도 좋았다. 신기하게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10프로 정도가 아시아 인종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 한국인도 한명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팜플랫에서 본 이름이 한국인이었다. 우리층에는 아무도 동양인이 없지만 가끔 바잉팀이나 디자이너팀에서 온 동양인을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말을 걸고 친한 척을 할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얼굴만 동양인일 뿐 여기서 태어난 프랑스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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