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호선은 서울로 치면 2호선과 비슷하다. 채도는 전혀 다르지만 나름 같은 초록 색깔의 계열이기도 하고 지상철이다. 항상 출퇴근을 하면서 타는 호선이라 어느 역에서 지하로 내려가고 어느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지 꿰뚫고 있다. 도착하기까지 몇 분이나 더 남았는지도 역 이름만 보면 바로 계산이 된다. 특히 좋아하는 구간은 내가 내리는 역의 딱 한 정거장에서 커브를 쳐서 들어오는 곳. 이 골목에는 지상철이 지나가는 길 좌우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아주 가깝게 마주보고 있는데 가구마다 저녁의 풍경들이 그대로 보인다. 옷을 갈아입고 있어도 전부 훤하게 보일만큼 거리가 가깝다. 따뜻한 조명이 각각 켜진 사람들의 집을 보고 있으면 수많은 삶들이 영화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일상들이 영화이기도하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보고 인상깊었던 작품도 이렇게 일상적인 영상들을 수십개의 프레임으로 프로젝션한 컨셉인데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순간들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그런 감동같은 창문들.
출근길에 6호선의 종점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2정거장만 가면 아뜰리에에 도착하는데 그동안에는 일부러 책도,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 지루함 속으로 나를 일부러 넣는 순간이다. 시간이 더 늘어진 것 같은 기분. 휴대폰으로 잠깐 뭘 검색하거나 메시지를 쓴다고 하면 1분이 10초도 아닌 것처럼 지나서,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 문이 열린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1분이 5분처럼 흐른다.
2.
마리옹과 주말에 와인한잔 마시러 갔던 곳. 요즘은 주로 Pinot Gris를 좋아한다. 원래는 이 꺄브의 옆에 있던 곳에 가기로 했는데 도착해보니까 Terre와 Mer로 육류와 해산물로 두군데로 나눠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해산물 꺄브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마리옹에게 우리가 원래 가기로 했던 Terre말고 왼쪽 문으로 들어와라는 문자하나만 보내놓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산물이라서 와인도 전부 Blanc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리옹이 늦어져서 30분 정도 혼자기다리면서 먼저 와인을 마셨는데 수제버터를 된장처럼 듬뿍 퍼다 접시에 가져다 놨는데 아무것도 없이 그냥 빵에 그 버터만 발라만 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저 읽으며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있으니 그저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존버거의 에세이를 영어 원서로 읽으면서 불어로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그런 소소하지만 값진 행복.
3.
우리집에서 주말동안 지냈던 리사와 미카엘이 마지막날에는 디저트를 사다놓고 가서 빵집의 디저트를 간식으로 매일 출근하면서 하나씩 들고 나가서 먹었다.
4.
족발을 해먹으면 좋을 고기를 마트에 팔아서 사와서 직접 요리를 해 봤지만 겉모습은 그럴 듯 하게 완성이 되었는데 원하던 그 맛이 안났다. 차라리 폴란드에서 먹었던 요리의 돼지껍데기가 더 족발에 유사했다. 프랑스의 족발용 고기는 또 저렇게 붉은 빛이 돌았다. 한끼니만 먹고 그대로 버렸다.
Retour à Séoul (리턴 투 서울)이라는 데이비 추의 영화. 시사회가 있어서 늦은 시간에 좀 멀리 떨어진 mk2 loire지점이었는데도 갔다. 대신 다음날 며칠동안 피곤해서 고생했지만. 베트남에 있을때 다이아몬드 아일랜드를 관람하면서 감독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감동이 너무 짙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한국영화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리턴 투 서울이었다. 영화에서 다룬 소재나 그 주제를 둘러가는 방식들이 너무 좋았지만 전문배우를 쓰지 않아서 그런지 영화에 집중하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다. 오광록배우는 배우인데도 과도하게 몰입한 연기가 역할을 넘치게 만든 것 같고, 불문과 학생들만 그냥 올려놓은 연기들이 아쉬웠다. 대신 주인공처럼 한국을 처음 와보는 사람의 시선이 좋았고, 입양이라는 주제를 관통해서 다시 부모에게 말을 건네는, 버림당한 그 마음으로 평생을 안고 살아온 인간을, 그 만남과 문화의 차이를 카메라에 잘 담았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오광록배우가 프랑스인이 된 딸, 프레디에게 이제 한국에 돌아와 우리랑 같이 살자, 한국남자와 결혼도 해라.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데 그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충분히 그럴 듯 했다. 프레디는 '난 프랑스사람이야'라고 되받아쳤다.
5.
올해의 설날도 그저 조용하게 지나갔다. 일부러 떡국을 한그릇 끓여먹었던 것 말고는 별다른 일 없이.
6.
대출서류에 사인을 해서 수요일 아침에 부쳤다. 법규상 대출서류를 받고나서 11일이 지나고서 사인을 해야 된다는 규칙이 있다. 급하게 다음날 사인을 하지말고 11일동안 천천히 훑어보고 고민을 해보라는 법이라는데 참. (...Une fois le délai de réflexion de 10 jours calendaires écoulé, vous pouvez retourner l'offre de prêt à votre banque dès le 11ème jour...)
Élégant, c’est-à-dire détach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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