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책은 외국어 책보다 항상 쉽게 읽히기 때문에 더 아껴읽고 미뤄읽다가 책장의 모든 한국어 책들이 첫 50페이지 정도만 읽히고 만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은 퇴근하고 꾸준히 책읽는 버릇을 들였다. 체력적으로 피곤할 때에는 외국어 활자를 읽거나 작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한국어책을 읽는 건 인스타나 유튜브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행복을 가져다 줄테니까. 소파에 앉아 와인 한잔을 올려놓고. 그러다가 이럴꺼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읽으려고 오랜만에 욕조청소도 다시하고 마저 이 책을 읽었다. 이방인의 삶을 처음으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왔던 시기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가 아니었을지 되뇌어본다. 나도 나 자신의 속마음의 변화나 발전을 알 수 없지만 사실 그런 결심은 단 한번에 이루어지기보단 여러 무의식과 의식들이 겹치고 쌓여서 어느날 단번에 비행기티켓을 끊는 셈이니까. 최근엔 한 친구에게 이 책을 소개해 줬는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경험이 부러웠다고 하는데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사유를 갖고 살 수 있는 경험을 얻는 것. 어떤 것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그런 미적이고 시적이고 문학적인 경험들. 이번이 세번째로 다시 읽는 거라서 익숙한 파트도 있고, 다시 봐도 그때도 좋았단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는 작품들 사진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나의 대학생 시절의 마음이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애정하는 책이다. 태도와 이방인, 예술에 관한 책.
실제로 원고를 읽어나가니 길고, 암담하고, 눈물나고, 때로 눈 앞이 환해지기도 하는 여행이 시작된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스스로 내 발자국을 쫓는 일은 낯익기도, 낯설기도 했다. 내 안에서 이미 체화된 어떤 사실들이 꿈틀거리며 내 몸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순간이 보였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던 무렵 일어났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땅히 생각나야 하는 어떤 사실들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찍은 발자국 사이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보였다. 기억이란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다.
뉴욕은 내가 오래 살던 곳이다. 그곳에서 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고,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의 대부분이 형성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누구보다 뉴욕을 사랑한다고, 나에게 뉴욕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이것이 매우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용산이 특별하고 누군가에게 베를린이 특별한 것처럼, 나에게 뉴욕이 특별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록하니까. 서문 중.
팀은 중년의 남성으로 작은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푸른 눈을 갖고 있다. 그는 누구에게나 갈 길을 먼저 내어주고 자신은 그뒤를 따른다. 언제나 친절하고 공손한 말을 쓰고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다.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다. 나이가 들면서 매무새가 풀어지는 경우가 있다. 동작 하나하나에 사려가 없어지고 아랫배에 힘이 빠지고 눈빛도 입도 느슨해지고. 내가 보충 설명을 했다. “항상 침착해 보이시거든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에요.” 나의 설명에 팀이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난 마음도 차분해요. 큰일이 일어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팀은 저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듯, 자신에 대해 말했다. 그와 이 짧은 대화를 나눈 지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도 길을 걷거나 방을 치우거나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I am calm inside.”
매 순간 치열하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어디선가 그 솔직함이 그보다 위대한 형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솔직함의 의미이고 핵심이다. p.56
얼마 전 읽은 말이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이다.”
아무래도 내가 모국을 떠나 살다보니 이런 문구에 예민한 것 같다. 언젠가 “사람은 아무데서나 잘 잘 수 있어야 한다”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나에게 누군가 해준 말이다. 이 말은 당시 나에게 충격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다. 어디서나 제 집처럼 편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물론 아직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잘 안 오지만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다. 더욱 와일드하고 더욱 넓어지라는 말이었다. 강인하고 완벽하고를 떠나서 내가 뉴욕을 타향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뉴욕은 나에게 어떤 곳일까. 어느 쪽이라 말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뉴욕에서 미학적으로 훨씬 만족하고 있고, 그 이유 때문에 어쩌면 나는 고향보다 뉴욕에 더 끈끈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붕 뜬 이방인 신세인 것도 그리 싫지많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말과 관련된 이유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길감. p.73
최근에 읽은 어떤 얘기보다 영감을 주었다. ‘걷기’도 태도이고 ‘요리하기’도 태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p.142
엘리자베스 하드윅은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놈의 생각이란 걸 해야 하니까”라고 했다.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지만 요즘의 미국처럼 근본주의자가 판치는 세상에서 믿음은 생각으로부터 면죄부를 발행한다. 지적인 믿음에 돌을 던진다. 배타적인 믿음만이 진정 숭고해진다. 얼마전에 누가 그랬다. 세상은 언제나 지성과 정의에 반하는 쪽으로 돌아간다고. 이 둘은 사람들의 온갖 재미를 빼앗아가니까. p.239
대부분의 사람들이 얘기할 상대가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 말이다. 결국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얘기를 드렁줄 상대가 나타났을 때 그 얼굴에 번지는 표정은 정말 볼만하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휘파람을불며 다니는 착한 사람 호세페레 같은 종류는 아니다. 그런 착한 사람들은 실제로 남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고, 나처럼 이기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그냥 착해서 죽도록 지겨워하면서도 얘기를 들어주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신나지만은 않는다. 마음씨 착한 호세가 할머니를 기쁘게 하는 장면에서 나는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을 본다. 우리 어머니는 자주 나에게 이기적으로 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조언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다. 아니, 나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기적이지 않다. -워커 퍼시, 영화광
내가 본 그의 얼굴은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의 그것도 헤로인 중독의 그것도 아니었다. 송곳으로 찌르는 집중된 눈빛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 뉴욕 시내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칠 법한.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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