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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한국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4. 10. 3.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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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말의 일정마저도 조각조각 분리해서 미리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좋아하기보다는 그렇게 준비해 놓아야 마음이 안정되는 성격이다. 처음 유럽에 배낭여행으로 왔던 때에는 현지상황도 모르면서 플랜 A, B, C, D까지 촤르르 준비해놓고 친구와 함께 볼 요량으로 브로슈어까지 만들어서 여행을 떠났다. 물론 지금은 짧은 비행을해서 여행을 갈 땐 대략적으로 어느정도 잡아놓고 현지에서 구체적인 선택을 만들어 나갔다. 밀라노에서 베르가모까지 기차를 탄 후 수영복을 사서, 산펠리그리노의 온천까지 가는 일정은 즉흥적으로 꾸려졌으니까. 그래서 더 즐겁기도 했다.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당일의 계획이 완벽하게 딱 맞아 떨어짐에서 오는 짜릿함. 밀라노에서 산꼭대기의 온천까지 갔을때만큼이나 즉흥적일, 이번 일요일엔 다음날인 월요일에 떠나는 일정의 한국행 티켓을 예약했다. 운이 좋게도 딱 한자리 남아있던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으로 끊을 수 있었다. 중간에 한번 마일리지용 티켓이 사라져버려서 불평을 하면서 일반티켓을 끊으려다가 마지막 결제창에서 멈춰서고 다시 검색해보니 마일리지 티켓이 마법처럼 눈앞에 딱 나타났다. 이렇게 가까운 날짜에 보너스항공 끊기가 쉽지 않은 일이고 보통은 먼 미래를 구상해 놓아도 날짜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마일리지를 쓰면서 티켓을 끊기에 꽤 괜찮은 기회였다. 일단은 한번 눈 앞에서 티켓을 날려버린 이후론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든 공항에는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월요일의 스케줄은 오전에 인사팀에 면담을 갔다가 동료들과 점심을 다같이 먹고 피에르를 만나 캐리어를 받고 나중에 등기로 부치려고 미리 작성한 서류를 전달하고 샤를드골로 향하는 것이다. 면담전에는 와인도 몇 병사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마트에 잠깐 들려서 라클레트 치즈도 샀다.

단절된 공간인 비행기 안에서 오로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기내식을 먹는 것도 나의 즐거움 중에서 하나지만 비행을 하기 전 설레임이 어디를 떠나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특히 여행을 떠나기 딱 일주일 정도의 시간의 들뜬 마음. 한국으로 가는 비행스케줄이 월요일이 아닌 수요일도 있었는데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도 하고, 단지 여행 전의 설레임을 만끽하기 위해서 더 늦게 출발하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다. 한국에서 있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이틀이나 더 벌 수 있으니 정신차리고 티켓은 빠른 것으로 끊었다. 바로 캐리어를 준비해놓고 다음날에 나갈 준비를 마치면 마저 필요한 세면용품을 더 넣고 캐리어 문을 닫는 것이다.

 

2.

일정이 조금 빠듯해서 왜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약속이 들어있는지, 그것만 없었으면 여유롭게 갔을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웬걸, 마지막 점심식사자리를 핑계로 해서 나에게 인사말을 쓴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줬다. 그런줄도 모르고. 며칠전엔 은으로 쥬얼리를 만드는 발레리가 그녀가 항상 끼고있는 것과 똑같은, 작은 고리들이 연결된 반지를 선물해줬다. 작은사이즈가 별로 안 남아 있었지만 검지손가락에 내가 항상 끼는 다른 두꺼운 은반지와 함께 끼니까 너무 예뻤다. 쥬얼리에 관해서 설명도 많이 해주고 나중에 수업을 듣게되면 또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그동안 내 사무실에 와서 급한 일만 없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몇시간 동안이나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발레리.

발렌티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장에서 나눠끼는 알록달록한 우정팔찌를 걸어줬고 동료들이 다같이 준비한 선물은 패션전문 백과사전 같은 서적과 근사한 블루투스 스피커였다. 이 날의 점심도 델핀이 내 몫까지 먼저 계산하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처럼 끔찍하게 힘들 때 포기하고 그만둬버렸으면 이렇게 좋은 마무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다음을 위한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도, 그보다 더 큰 감사한 마음으로 한국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양양 낙산사에 가는길, 시장골목에서. 캐리어에 넣어서 가져올 곤드레 한봉지를 샀다.

 

3.

겨우 작년에 한국에 오기는 했지만 점점 더 해외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다시 돌아온 이곳은 작년보다도 훨씬 낯설다. 커다란 샤를드골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로 향하면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착륙을 하면 먼저 공항리무진 버스티켓을 구매하고, 신나는 편의점 구경에 간다. 편의점에서는 유로에 비해서 원화의 물가가 저렴하다고 느껴진다. 며칠 후엔 목욕탕에서 나와 애플페이에 등록된 아멕스카드로 결제를 시도를 해보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알림이 뜬 것으로는 바나나우유가 1.2유로에 계산이 되었다. 꽁뚜와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아, 한국에 있는 동안 두 번 동네 목욕탕엘 갔는데 처음 번엔 목욕바구니만 잘 챙겨가서 지갑을 잊어버렸고, 휴대폰 유심도 아직 구매하기 전이어서 전화를 빌려서 엄마에게 전화해 목욕비를 계좌이체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고는 며칠을 유심없이 지냈는데 생각보다는 홀가분했다. 떡두꺼비가 귀퉁이에서 쳐다보고 있는 익숙한 온탕에 들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수십 번도 더 와본 곳이지만 집 공사를 해보고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2미터제곱도 채 안될 탕의 한쪽 면에는 온갖 다른 타일들 5가지를 붙여놓았고, 벽에 전기선을 고정시켜놓고 실리콘으로 대충 메꿔놓은 곳도 보였다. 

아무도 개의치 않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 장소는 목욕탕이라는 역할만 하면 되니까. 프랑스에서 온천에 가면 알프스산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마음껏 쓸 수 있는 향 좋은 샴푸도 있지만 몸에서 락스냄새가 한참 진동을 하고 수영복을 꼭 입고 있어야 했다. 그 곳의 단점을 장점으로 치환한 장소가 나의 궁전목욕탕이다. 알몸의 여성들을 보고 그들의 나이와 인생을 짐작하는 것도 탕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쭈글쭈글한 살과 앳된 얼굴들과 부황을 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등. 

목욕탕에 자주 오는 단골들은 목욕바구니를 차곡차곡 선반에 정리해 두었는데 아주머니들은 본인의 이름을 적기보다 자식들의 이름을 유성매직으로 크게 적었다. 승호, 경택, 성현이라는, 이름의 스타일로 짐작해보면 이제는 다 큰 아들들이었다. 추석때 엄마가 작은엄마들을 자식의 이름으로 부르는 걸 듣고 이게 어렸을 땐 너무도 자연스러웠다는 것을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여자목욕탕에 남자이름으로 적힌 바구니들이 가득한 이유.

 


맛있는거 많이 사준 친구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제일 감동적이었던 붕어빵. 겨울에 한국에 오는 걸 싫어해서 그동안엔 항상 기회가 없었다.

 

 

 


4.

엄마를 따라서 추석날 차례상에 올릴 문어를 사러 갔다. 커다란 문어 한마리가 16만원이나 한다는 것을 모르고 컸다. 아주머니가 7만원이라고 하는 대답을 들었는데 알고보니 1킬로에 7만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명절날 남은 문어가 반찬으로 나오는 초고추장으로 무친 문어숙회보다 올리브와 감자를 넣고 올리브유로 버무린 이태리식 문어 샐러드가 언젠가부터 나에겐 더 익숙한 문어요리가 되었다. 문어가게는 오로지 문어만 판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문어에 이토록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어린이 놀이방에나 있는 알록달록한 풀볼공을 문어가 들어있는 망에 하나씩 넣어둬서 수족관 수면에는 공들이 동동 떠있었다. 아주머니는 큰 문어 몇 개를 집어올려 보여주더니 펄펄끓는 솥에다가 다른 할머니 손님의 문어와 함께 넣고 삶았다. 솥에서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문어를 다시 얼음물에 잠깐 담갔다가 문어가 정면으로 딱 보이게 예쁘게 랩을 씌워서 건넸다. 이 과정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기다리던 나를 놔두고 엄마는 다른가게를 바삐 돌아다녔다. 그런건 나도 엄마를 닮았나. 

 

16년도 이후에 처음으로 명절에 맞춰 한국에 와있었다. 잠깐씩 한국에 들어왔을 때에도 내 스케줄에 맞춰 비행을 했지 명절을 중심에 둔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먼 친척들을 보고, 그동안 새로 태어난 생명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있기도 했다. 아이들은 금세 처음보는 나를 프랑스언니라고 불렀다. 기억이 아주 흐릿하게 남아있는 산소에도 갔다. 할머니집 옆에 붙어있던 어렸을때 살았던 집을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들어가봤다. 내 기억에는 삼형제가 넉넉히 함께썼던 만큼 큰 방이었는데 지금은 키가 커져서 보는 시야가 높아졌는지 공간을 인식하는 감각 자체가 달라진건지. 어찌되었든 나의 몸이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서 말 그대로 두배는 넘게 커져서 그 방이 아주 작아보였다. 

저녁이면 치매가 더 심해진다고 낮에 할머니의 요양원에 들렸다. 요양원은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 입구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맨발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은 아주 묘했다. 어느 다른세계로 통하는 그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또 다른 문이 있는데 요양사들이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리고 닫힌다. 우리가 나갈 참에 어느 할아버지는 그 문 앞에서 아주 가만히 서 계셨다. 나가고 싶어서 그러신거라고 요양사가 알려줬다. 요양사가 비밀번호도 코드가 누구에게나 다 보이게 누르는데 그 번호도 따라 누르지 못하고 문 앞에서 바깥을 바라만 보고 서있는 건 어떤 상태일까.          

우리 할머니는 프랑스라는 단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먼데서 왔다는 것도 알았고, 이름도 기억을 했다. 요양사가 할머니들에게 간식으로 요플레를 하나씩 나눠줬고, 어떤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직접 먹여주기도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입가에 묻은 요플레도 숟가락으로 다시 긁어서. 

 


고양이가 있는 망원동 작업실에서 친구들과


파트릭처럼 행복하게 먹은 보리밥


아름다운 햇살이 쏟아지는 날, 서촌에서 지흔이와 데이트


단정한 공간의 이자카야에서 다정한 데이트
오랜만에 할머니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친구집에서.

 


5.

안그래도 한국어가 적혀있는 주변이 생소한 나인데 시선을 끄는 문구들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었다. 발랄한 말투로 적어둔 '오늘은 팥빙수 먹는날'. 다리에 쥐나는 분. 다리에 쥐가 난다는 것을 문장으로 쓴 것도 생경하고 다리에 쥐나는 분이 있고 안나는 분이 있는지 구분을 짓는 것도 애매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골치아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눈에 띄지만 모든 내용의 글자크기와 배치를 난해하게 해둬서 오히려 궁금해서 다 읽게 만드는 전단지. 인생고민 끝! 행복시작! 에 밑줄 한번 더. 안국역 근처의 포장마차 일대에서 본 군밤파는 곳. 혼자다녀서 식사를 건너뛰었다면 사먹어봤을텐데.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 밤. 


공예박물관에서 본 딱지접기에서 전개를 해서 만든, 유리지 공예상을 받은 작품.
인사동 앤틱페어의 부스에서 본 떡무늬를 내는 도구들.

 

 


6.

서울에서 하데스타운이라는 뮤지컬을 봤다. 파리의 극장과 오케스트라는 익숙했지만 한국에서는 공연장에 처음 가본 것이었다. 유럽풍을 따라서 재현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지만 있다보니 편안함을 느낄 수는 있었다. 펜슬스커트에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직원들이 많이 있었는데 올리브영에 와있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끊임없이 안내 멘트를 했다. 이 부분이 가장 특이했다. 규모가 훨씬 큰 샹젤리제 극장이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도 시간이 되면 종만 크게 울리고 말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몇 년전에도 골랐던 곳이었던 창경궁에 또 오게되었다. 경복궁은 사람이 많아서 배제했던 것 같고.. 다음번엔 창덕궁이나 덕수궁에 가야겠다. 

1000원이라는 입장료가 말도 안되는 창경궁이다. 유럽에서는 어느 박물관을 가도 10유로는 내야하는데 1유로도 채 안되는 1000원으로 가이드 투어까지 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나 들어봤을 왕들의 이름과, 한국사를 줄줄 꿰고 있는 듯한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서 한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때 전부 불타서 지금은 복원을 했지만 공간이 기존의 모습에 비해서는 텅텅 비어있는 상태라고 했다. 전쟁이후에 문들만 남아있는 베트남의 후에지역과 비슷했다. 넓은 터와 궁이 멀리서 꿋꿋하게 보이는 풍경도 근사하다. 화려한 천장장식을 보려고 중정에 얼굴을 들이밀면 가장 먼저 맡게되는 건 오래되고 짙은 나무 냄새다. 빼곡하게 교차시킨 천장의 나무 기둥들이 풍기는 진한 나무향. 우드톤의 향수라도 차마 담기지 않는 아주 진한 나무향. 마음이 가라앉는 향. 

기와 지붕의 가운데를 높이 올린 부분을 용마루라고 부르는데 통명전은 왕이 거주하던, 가장 격이 높은 장소인데 그런 곳들은 아예 용마루가 없다고 한다. 용마루를 치켜올려 애쓰지 않아도 기품이 있는 곳이라는 뜻인가? 창경궁은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왕실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궁.   

 



인왕산의 산세가 보이는 찻집 차뜰.
안국역의 근사한 타일벽 장식. 택배로 선물을 보내준 다슬.
못 먹고 가면 아쉬울 동네 떡볶이



석류가 단단히 매달린 나무


 

 


7.

이제는 너무 익숙한 두 공항의 약자인 ICN와 CDG. 수화물 셀프체크인에 줄을 서서 사람들의 택을 보고 행선지를 맞춰봤다. 타이페이를 뜻하는 TPE, 뉴욕의 JFK, 일본의 NRT 등. 한번에 떠오르는 곳들도 있었지만 일본인 단체관광인 것으로 봐서 일본의 도시인데 도저히 감이 안잡히는 곳들도 있었다. 

 

캐리어에 잘 싸서 챙겨온 밥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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