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에서 몇 해를 보내고나니 한국처럼 3월의 입학식이 아닌 9월의 시작으로 절기가 적응된 것 같다. 처음엔 여름이 되면 파리의 가게들에 붙어있는 한달동안 문을 닫는다는 메모지가 놀라웠는데 그것도 이제 당연하게 되었다. 달콤했던 여름방학이 지나가고 출근을 앞두고 주말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긴 여름의 휴식이 지나고 마주하는 선선한 9월이 새로운 시작의 절기가 된 것이다.
2.
안시에서 보낸 일주일. 언어별로 가져간 책들 중에 가장 몰입이 잘 되어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John boyne의 소설. 오래전부터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주문한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생각보다 흥미가 떨어졌다.
3.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단맛이 하나도 안나는 아이스티도 이어서 마시면서 약속시간을 기다렸던 곳 / 보르도에서 7월 초에 사왔던 마늘꽈배기가 아직도 쌩쌩하다. 시장아저씨가 4개월은 간다고 했는데 진짜인가보다. 마늘이 많이 필요한 음식이 있을 때마다 직접까서 쓰는게 냉동실구석에서 굴러다니는 깐마늘을 찾는 것보다 빠른 것 같다.
4.
지난주는 피에르와 집공사를 열심히 했다. 같이 공동작업을 하고 치울때는 합이 잘 맞아서 헤어질 결심에서 조사실에서 점심을 먹고 완벽한 커플처럼 손발이 잘 맞던 해준과 서래가 된 느낌이 든다. 헤어질 결심은 개봉될 당시에 세번이나 봤지만 얼마전에 영화관에서 또 보아도 여전히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5.
나의 소중한 친구 로렁의 작업실에 드디어 다녀왔다. 몇 달간 치열하고 고독하게 작업한 것들을 하나씩 보여주는데 비록 나는 비전문가지만 감상이나 코멘트를 하는 것도 자유로웠고 로렁도 무척 기뻐했다. 자주 와본 곳 같은 그런 편안함을 주는 곳. 일본에서 벚꽃무늬가 있는 맨홀 뚜껑 위에 동전처럼 긁어서 종이를 대고 그려온 그림이 거실 벽에 있었는데 단순하지만 아름다웠다.
6.
퐁피두에서 André Breton의 작업실을 복원해 놓은 곳. 창문으로 막혀있어서 더이상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꼼꼼히 모든 오브제를 둘러봐도 굉장히 아름다운 것만으로 빼곡한 곳이다.
7.
Kees van dogen의 작품. 도빌에서 도록을 보고나서 이름을 기억해 둔 작가였다. 옷의 디테일에 물감을 두껍게 입혀서 물리적으로 입체감을 낸 것이 좋았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그런 공간감이 눈에 띈다
프란시스 베이컨. 최근엔 페인팅에 이렇게 조각상을 같이 곁들여서 전시한 경우를 많이 봤다. 세그림 모두 그의 연인을 그린 작품이며 첫번째 그림은 프란시스 베이컨이 죽었을 당시의 위치와 동일하다고 한다.
8.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관에서 스티븐쇼어의 작품들을 봤다. 마틴파보다는 조금 덜 폭력적인 방향으로 미국사회를 렌즈에 담는다. 인물과 사물을 찍은 것들도 좋았지만 특히 아름다웠던 건 Uncommon place 시리즈의 미국의 건물과 도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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