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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4. 3. 1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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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 한달은 컬렉션시즌이라 한동안 퇴근을 늦게 했다. 당일날 새벽엔 4시 30분에 집에 도착해서 딱 1시간만 눈을 붙이고 6시에 다시 샹젤리제에 있는 패션쇼 장소로 갔다. 점심으로 스태프들과 햄버거를 다 같이 먹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택시기사 아저씨마저도 밤새서 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패션위크 스케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잠깐 낮잠을 자려던게 일주일동안 밀린 피곤함을 못이기고 깊은 잠에 들었다. 9월에 했던 첫번째 시즌과 다르게 동료들과도 더 편한 사이가 되기도 했고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하던 마음도 조금 녹아서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좋은 엔돌핀으로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2.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La salle des profs (독일어 원작: Das Lehrerzimmer). 처음부터 엔딩크레딧까지 느슨할 틈 없이 흥미로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교무실에서 생긴 절도사건으로 시작해서 학생들과의 갈등이 일어나고 순수하게 아이들을 좋아했던 주인공인 클라라도 결국엔 무너지게 되는데, 사회의 소우주 형태인 학교에서 보여지는 정치적인 형태와 모순과 비난들은 긴장감을 돌게 한다. 학부모들을 초대하는 저녁엔 화병에 꽃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감정이 격양되어서 목에 메고있던 스카프도 숨을 못쉬게 될만큼 갑갑해 보이는 장면까지 작은 요소들도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는데 한 몫을 했다. 어떤 진실과 진실을 둘러싼 유죄와 무죄를, 잘잘못을 따지는 영화로 괴물이나 추락의 해부같은 작품들과 어떤 비슷한 결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세 작품 중에서 이 독일영화가 제일 좋았다. 독일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독일영화는 익숙하지도 않지만. (외국어로 치면 오히려 이란이나 아랍어로 된 영화를 더 자주 본 것 같다.)            

몽파르나스역에서 파는 꺄눌레. 브리짓이 발렌타인데이에 사왔다. 

 

점심시간에 회사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본 이우환작가의 전시.

3.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5구의 골목길에 숨어있는 체스카페. 일로나와 일식집에 가다가 우연히 발견하고선 주소를 저장해뒀다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체스테이블로 가득 차 있지만 전혀 보드게임카페같은 분위기는 아닌 곳이다. 커피보다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셔야 할 것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체스이야기라는 소설을 쓴 스테판 츠바이크의 이름을 따서 츠바이크라는 칵테일도 있었다. 마리옹과 나는 수준급으로 체스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 둘이서 사이좋게 서로 봐주기도 하고 한번씩 이기고 말았는데 카페의 내부를 파악해보니 손님들은 우리처럼 일행과 온 것이 아니라 와서 게임을 둘 상대를 찾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오른편에 앉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젊은 러시아 남자들도 있었고, 불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영어로 상대방과 간단한 대화를 한 후에 그저 체스를 둘 뿐이었다. 스포츠든 게임이든 언어를 교환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게 새롭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벽에는 체스와 관련된 사진들로 가득했다. 챔피언십에서 체스를 두는 플레이어부터 공원에서 체스를 두는 모습까지. 카페의 한 구석에는 천장이 통창으로 되어서 햇빛이 쏟아지는 곳이었는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은하게 빛이 들어왔다. 햇살 좋은 따스한 봄날에 다시 또 가봐야겠다.   


프랑스 전국 각지의 앤티크 북 서점들이 참여한 북페어에서. 아름다운 프린팅들을 봤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불어로 연출한 연극을 본 곳. Théâtre Antoine


쇼 며칠전에 건물 입구에 모델캐스팅을 위해 붙여놓는 전단지. 딱봐도 모델같은 키가 크고 마른 여자들 수십명이 하루종일 수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했다.


 

 

내가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서점과 바로 붙어있는 아름다운 옛날 영화관. 아직도 한번도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소규모 영화관이라 2-3달 정도 철지난 영화를 틀어주는데 보통은 이미 봤던 작품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반 영화관에 상영될 당시에도 이미 선택지에서 배제된 영화들일 뿐이었다. 

 

 

일반 바닥타일재보다 10배는 비쌌던 이태리산 디자이너 타일. 한번 보고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고, 비슷한 대체품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파리의 고급 타일가게를 족히 10군데는 다 가 본 결과, 마음을 정하고 주문서를 넣었다. 원하는 무늬들을 다 고르면 우표처럼 절취선을 또독 뜯어서 집으로 갖고 갈 수 있게 해준다.      
얕은 물결무늬를 이루는 건물. 꼭대기에 요새같은 테라스모양도 재미있다.

 



 

아름다운 폰트의 간판 AU VER A SOIE

 

 

의사 세 명과 함께한 말레이시아 가정식.
정적이고 우아했던 우리회사 쇼룸. 오래된 아파트를 있는 그대로 힘껏 보여주되 아주 자연스러울 정도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리모델링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벽지도 50년대 스타일로 새로 붙였지만 그 위에 다시 뜯은 자국을 낸 것도 있었고, 오래된 라디에이터가 주는 느낌을 살리려고 손대지 않고 놔두고, 작동이 되는 전기 라디에이터를 따로 설치를 해놓았더라. 일반 옷가게라고 치면, 전시해 둔 의상의 갯수만 세어보면 첫번째 룸에 전부 다 갖다놔도 전혀 무리 없을 정도의 규모였지만 공간의 여백이 주는 뉘앙스가 또 있으니, 어떤 방은 비어있기도 하고, 어떤 방은 쥬얼리만 달랑 놓아져 있기도 했고, 어떤 방은 행거에 가볍게 몇 착장이 걸려 있었다. 


몇 달 전에 예약해놓았던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공연.


5구의 벼룩시장의 종착점 부근에 있었던 유고슬라브 식료품점이다. 세르비아인인 나탈리가 챙겨주던 치즈가 들어간 빵이 생각나서 사먹었는데 아쉽지만 같은 맛은 아니었다.
커피컵 받침 없이 커피잔만 달랑 나오는 유일한 카페. 이런곳은 참 드물지 않냐며 아저씨에게 내가 질문을 하니, 편하고 얼마나 좋냐며 허허 웃었다. 집에서도 컵받침을 안쓰지 않냐며. 바스티유의 대로변을 걸을 때면 여기서 종종 카페를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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