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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_ 데이비드 실즈

甛蜜蜜/영혼의 방부제◆

by Simon_ 2023. 2. 1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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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_ 데이비드 실즈

 

 

“수많은 책을 그럭저럭 아는 것보다 십여 권을 아주 깊이 아는 것이 더 낫다.” 데리다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영화 제작자에게 방대한 개인 서재를 보여주자 제작자가 그 많은 걸 다 읽었느냐고 묻는다. 데리다는 대답한다. “아뇨, 아주 조금만요. 하지만 아주 꼼꼼하게.” p.159

<mais bien sérieusement très sérieusement.>

 

이부분을 읽고나서 데리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고 이 짧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자크데리다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친숙한 불어로 서재와 집을 잠깐 보여주는데 소탈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그런 말투다.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영상 중 하나인 움베르토에코의 아름다운 서가에 비해서도 한참 소박한 프랑스집의 서재였다. 책 한권을 집으러 서가를 걸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카메라 동선인데 수많은 책 이외에도 벽에 걸린 작품들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끔 괜찮은 예술작품을 보면 구글에 한번, 네이버에 한번 검색해보는데 그럴때 내가 블로그에 썼던 글이 뜰 때가 있다. 이미 찾아봤던 작품들인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모습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몇 년전이나 지금이나 취향은 똑같네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나 사진가들의 작품들은 잊혀지기도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라이브러리같은 영상은 길게 인상을 남기는 어떤 무언가가 있었다. 이 책도 나에겐 그런 종류의 책이다. 처음 읽었던 몇년 전에는 신선한 충격을 줬고, 책 귀퉁이를 두툼하게 접어가며 읽었으며, 이 책을 읽었던 대학가 카페의 풍경마저도 기억이 날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문학이 인생을 구하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에 문학이 인생을 구할거란 이야기. 실즈가 늘어놓는 시덥잖은 에피소드들이 눈물나게 좋은 이유들. 요즘은 다시 조회수가 떠서 1-2년 전에 내가 썼던 블로그들의 글을 가끔 읽어보는데 어쩐지 정돈되지 못하고 불안하고 흔들린다. 지금도 물론 완전하게 정돈된 상태는 아니지만 이민을 온 초기에는 완전하게 혼란스러운 상태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렇다는 것 조차 알아채지 못했을만큼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누구보다 나를 더 위로한 것들이 문학이다. 나를 지탱하는 것.  

 

 

 

 

아녜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은 내가 지금까지 본 섹스에 관한 영화 중에서 가장 영리하고 슬픈 영화다. 클라라는 학생으로부터 연기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타인의 욕망에 의존해야 하는 점”이라고 대답한다. 발레리는 자신이 프레드와 데이트할 거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우린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 클라라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도 좋아한다는 어느 남자 얘길 하면서 “난 그런 타입은 싫어”라고 하자, 친구 마니는 “세상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니?”라고 묻는다. 

자우이는 타자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부르주아/보헤미안, 비행/순응, 친절/냉정, 금발/갈색머리, 배우/관객, 선생/학생, 형제/자매, 섹스/사랑, 삶/예술. 한 경호원은 몇 주 동안 고객을 이란 납치범으로부터 보호하는데, 고객은 결국 그 동네 프랑스 깡패에게 강도를 당한다. p.75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나는 단짝과 함께 일주일에 최소한 하룻밤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어정거렸다. 왜? 가판대에서 넘겨보던 지저분한 잡지와 목줄을 맨 개처럼 자기 짐을 끌고 다니는 섹시한 스튜어디스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모든 사람이 군인처럼 다급하게 각자의 목적지로 행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치 모든 곳 -세상의 모든 곳, 위니펙이든, 도쿄이든, 밀워키이든-이 가 볼 만한 곳처럼 보였다. p.89

 

그녀 곁에 있으면 때로 내가 약간 얼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그녀만큼 좋은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녀만큼 너그럽고, 친절하고, 세련되고, 공동체적이고, 정력적이고, 웃기지 않았다. 그녀는 시애틀에서 제일 멋진 파티를 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시애틀에서는. 그녀는 내가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 -학과, 도시, 종교-에 소속되어 그 일부가 되는 게 어쩌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녀는 아이를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할지, 어느 여름 캠프에 보내야 할지, 어디로 여행해야 할지 (로마, 늘 로마인 듯했다), 무엇을 구경해야 할지, 무엇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 제일 훌륭한 정보를 제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 p.99

 

책 말미에서 쿳시가 공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코스텔로가 공언하는 유일한 사실은, 진흙탕 속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다. 순전히 생존으로만 이루어진 동물적 삶. 이 작품이 더없이 기쁨을 주면서도 절망적이라는 점이 나는 못 견디게 좋다. 이 책은 삶을 편든다. 다만 자칫하면 떨어질 만큼 몹시도 좁은 능선을 따라서. p.118

 

우리는 각자 자신이 몸담은 문화만을 알고, 그 문화의 ‘진리’를 준수한다. 이런 “환영은, 인간의 시야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완전하다. 어느 민족이나 자신의 직물 무늬만을 알고, 자신의 전쟁과 도구와 예술만을 알고, 또한 자신의 별자리만을 안다.” 우리가 각자의 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설 순 없을까?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가령 “당신이 씨실의 규모를 자기 나름대로 정하고서 그것을 잣대로 삼아 시간의 폭과 공간의 길이를 바라본다고 하자. 그 천이 온 방향으로 무한히 반복되며 뻗어가는 것을 보면서, 당신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당신이 어떻게 하든, 그럼으로써 기뻐하는 사람의 수는 브리지 게임이나 보스턴 레드삭스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의 수보다 적을 것이다.” 정원에는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있다. 당신이 그것을 위에서 응시하든 다른 어떤 각도에서 응시하든, 그것을 치워 버릴 방법은 없다. 그리고 모든 바위는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무의미하다.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아무리 최면에 걸려 있다 한들, 당신도 그들의 전쟁에서, 우리의 전쟁에서 똑같이 죽을 것이다. 그 무슨 새로운 지혜를 무덤으로 가져가서 벌레들에게 해독시키겠는가?

지혜는 없다. 많은 지혜들이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망상적인. p.122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인데, 대부분의 소설가는 결국 단 하나의 이야기만 갖고 있으며, 그가 책을 아무리 많이 쓰더라도 그 하나의 본질적 내러티브를 무수히 다채롭게 변주할 뿐이라고 한다. 프레더릭 바셀미Frederick Barthelme는 삼십 년 넘게 똑같은 소재(결혼, 이혼, 중년 남성의 권태), 똑같은 배경(미국 남부 교외 지역), 비슷한 인물(가방끈이 너무 길고 장래성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주인공, 그의 심술궃고 지친 아내와 헤어진 아내와 건방지고 어린 여자친구)를 탐구해왔다. p.132

 

모든 것이 안락하고 올바르다는 도취, 세상이 경이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바셀미의 주인공들이 (그리고 바셀미가, 내가, 당신이) 늘 찾아 헤맸던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다. “공기가 마치 우리 몸에 딱 맞춘 장갑처럼 우리를 감싸는 밤이었다.” 이런 생각은 참 좋지 않은가. p.135

 

예이츠는 진리는 표현할 수 없고 체현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논점을 빗나갔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우리가 진리를 표현하려고 어떻게 노력하는가, 그 노력이 우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 또한 ‘진리’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은 대부분 상당히 비슷하다. 출생, 사랑, 못생기게 찍힌 운전면허증 사진, 죽음.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문자 메시지 : 우리가 혼자인 채로 삶을 살아가면서 삶에 대해서 발언하기 좋아하는 고독한 동물이라는 증거. 우리는 이방인들이다. p.151

 

조지오웰 <코끼리를 쏘다> 오웰은 겨우 삼천 단어로, 정치학 서가에 꽂힌 책들 전부보다 더 많이 인종주의와 제국의 기원, 심리, 영향에 대해 알려주었다. 정전의 반열에 올라야 마땅한 이 에세이의 힘은 그가 자기 내면에서 뒤섞인 놀라운 분노와 죄책감을 기꺼이 짚어내는 데 있다. 나는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곧 그다. p.172

 

나는 이십대 내내 거의 무일푼이었고, 열 달 동안 아버지 집 소파에서 잤다. 서른한 살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필스버리 매디슨&수트로 법률회사에서 교정자로 일했다. 어느 사건에서든 나쁜 놈 쪽을 변호하는 회사였다. 변호사들은 자기 일을 싫어했다. 나는 내 일이 좋았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두 번째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84

 

나는 의무감에서 읽고 싶진 않다. 세계의 역사에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책이 수백 권은 있다. 나는 그저 깨어 있고 싶고, 지루하지 않고 싶고, 기계적이지 않고 싶다. 나는 내 삶을 구하고 싶다. p.188

<병신 같지만 멋지게>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생은 피와 뼈로 이루어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애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엾은 사랑과 복잡한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스틴의 목소리 아래에는, 또한 아버지의 아포리즘 아래에는 표현되지 않은 감정의 광대한 저수지가 있다. p.188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 p.231

 

*데리다의 짧은 스크립트

https://www.youtube.com/watch?v=tdumO88JMxw&t=80s 

 

*데리다 전체 다큐멘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Pn1PwtcJfwE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

https://www.youtube.com/watch?v=UoEuvgT1wBs&list=PL4BX3RNDVMBnzQWSbkZ-8PBg5quk1q49u&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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