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마음으로_ 임선우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있을까. 특히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익숙한 배경이 나올 땐 내가 머물렀던 장소와 비슷한 곳들을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이 나무가 된 남자와 원룸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단편에서는 대학생때 만났던 남자친구의 자취방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침대만 있는 단촐한 원룸방. 원룸이라는 단어는 영어문장에서는 본 적이 없을 단어. 거창하게 두가지 영어단어로 조합되어있지만 오히려 한국말처럼 들리는 그런 특이한 단어다. 겨우 서너달 남짓 들락거렸을 법한 그 남자친구의 자취방이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면 굉장한 인상을 남긴게 아닌가. 어떤 단편에서는 주인공이 카페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20대 초반에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가지 알바를 해봤지만 그 흔한 카페에서 일한 건 딱 한번 밖에 없었다. 유럽배낭여행을 가기 전에 한달동안 일을 하던 안목바닷가 초입에 있던 카페. 거의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이 단편은 나를 다시 그 장소로 데려다 놓기도 했다. 이미 거리가 멀어진 연인과 헤어지는 결심을 하는 일상적인 순간들이나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동창을 산부인과 앞에서 만나 밥을 얻어먹는 단편은 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마음이 힘든시기에 친구의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고 그 어디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가 되는 일.
현실적인 판타지가 종종 등장하는 이 단편집은 소설가나 편집자들이 뽑은 리스트에 있어서 일찌감치 주문하게 되었는데 최은영이나 김애란작가와 비슷한 어떤 결이 있지만 그보다는 감정의 깊이가 조금 아쉽기는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며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몇번의 저녁을 걸쳐서 읽었다.
기적을 바라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나는 매장을 청소하며 생각했다. 실망이 쌓이면 분노가 되고, 분노는 결국 체념이 되니까.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p.24
성관계는 숙제가 되고 생리는 실패가 되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병원에서는 성관계를 숙제라고 했다. 이 날짜에 맞춰서 숙제하시면 되고요. 의사는 웃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1차 인공수정에 실패하고 나서는 나 또한 그 표현에 웃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곧바로 2차 인공수정을 진행했다. 남편에게는 시댁에 2차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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