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이를 다하다 누군가 자기 삶을 함부로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 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나는 내가 본 게 무언지 모르고 자랐지만 그 공간에 밴 공기를 오래 쐬었다.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와 비슷하게 평온하고 규칙적인 도마질 소리를 들으며 밀가루를 먹고 무럭 자라 열아홉이 되었다. p.14
그녀가 자리에 앉는 동안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좇은 기억이 난다. 그녀에게선 이제 막 바깥에서 도착한 사람의 바람 냄새가 났다. 그녀는 몸에 꼭 맞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붙는’ 옷이 아니라 ‘맞는’ 옷이었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조화롭고 은근한 세련미를 발견할 수 있는 차림이었다. ‘꼭 맞는다’는 느낌은 그 뒤로도 줄곧 그녀를 따라다녔는데 이따금 주고받는 소박한 선물에서도 나는 그녀의 더도 덜도 없는 정갈함을 느꼈다. 단정하되 지루하지 않은 감각을 발견했다. 그날 그녀는 낯선 이들 곁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지나치게 경청하는 것도, 그렇다고 방관하는 것도 아닌 똑바른 자세로. 그게 처음으로 본 그녀의 공적인 얼굴이었다. p.154
어딘가 틈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을요.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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