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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 Penguin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4. 1. 23.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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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13일에는 고고펭귄의 공연을 봤다. 10년 전부터 좋아하던 뮤지션인데 파리에서는 매년 라빌레뜨에서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유학생일때 비쌌지만 그래도 큰 맘먹고 예약을 했다가 코로나로 모든 세상이 멈추던 시기에 공연은 취소되었다. 그러고 다시 찾아온 공연은 패션위크 시즌과 겹쳐서 마음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하철에서 발견한 광고판. Les Gémeaux Scène이라는 파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처음 들어보는 공연장에서 아티스트 이름들이 두꺼운 검은색 정직한 헬베티카식의 폰트로 쫙 나열되어있는데 눈길을 사로 잡았던 GOGO라는 이름. 12월의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다. 몇 장 안 남아있던 마지막 티켓 중에 하나를 예약하고, 퇴근하고 케이마트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공연을 보러 갔다. RER을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갔다. 집과 마당이 이어진 빠빌리옹식의 동네가 계속 이어졌다. 초반부에는 최근에 낸 앨범을 주로 연주했고 좀 지나자 익숙한 음악들이 나왔다. 피아노 뚜껑이 열려있고 손을 넣고 활들을 고정시켜서 나는 건반음이라던가 콘트라베이스를 활로 세게 반복해 밀어서 나는 소리등 이어폰으로만 들었을 땐 상상해보지 못한 소리들을 시각적으로 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중에 스포티파이로 다시 들어본 음악들은 어쩐지 선명한 방식으로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집에 들어갈 때에는 우버를 불러서 탔는데 가장 흔한 자동차 방향제 냄새라서 그런지 베트남에서 택시를 가장 많이 타던 그런 시기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다. 이곳은 쌀쌀한 겨울날씨임에도 베트남에서 택시를 타면 피부에 확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의 공기를 들이키는 것처럼.          

 

 


2.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전, 마지막 출근날인 22일 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소소하게 회사에서 다과회도 했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니트를 입고 오는 날도 있었다.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선물로 양털실내화. 일로나커플이 우리집에 저녁을 먹으러 온 날 숙성건조시킨 고등어를 가져다줬는데 다음날엔 샌드위치에 넣어 먹었다.   

 

 

2.

기다리던 마크로스코 전시에 갔다. 샹젤리제근방에서 1호선을 더 이어서 가면 되는데, 주말에 그렇게 출근길을 반복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았어서 그렇게나 미뤘다.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본 전시였다. 항상 루이비통파운데이션에서 하는 전시들이 그랬지만 특히 모든 전시실을 총동원한 방대한 규모의 전시였다. 뉴욕이나 엘에이나 파리의 어딘가에서 어렵지 않게 가끔씩 보던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한 곳에 전부 모인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주말에 가도 북적였겠지만 크리스마스 연휴의 어느 중간에 갔어서 그런지 사람은 더 많았다. 쉽게 볼 수 없는 초기작들을 시간순서에 맞게 초반 몇 전시실에 정리되어 있었다. 미술관에서 무료로 주관하는 가이드가 우연하게도 타이밍이 맞아서 설명을 차근차근 들을 수 있었다. 동생에게는 가이드의 말을 동시통역으로 한국말로 전달했다. 이번엔 더욱이 한국말을 잊어버린 단어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 억지로 집어넣는 단어들의 용량이 많으니 넘쳐나서 빠져나간 단어들을 어떻게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처럼 우연히 합류한 수많은 관객들이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있는 와중에 잘 차려입은 어떤 여자가 이 그룹이 자신의 관람을 방해한다며 신경질을 내고 가이드 앞에서 작품을 봤다. 가이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이 여자에게 대꾸를 했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을땐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도 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한 톨의 이해심과 다정함도 남아있지 않은 매마른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인생이라면.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에단호크와 연기한 역할과도 닮았었다. 신경질적으로 우울한 나이든 여자. 화를 다스리고 내 안의 평온을 찾는 일. 그냥 늙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샤뜰레 공연장에 동생도 데려가고 싶어서 늦게나마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예약했다. 크리스마스 연휴의 시작이었다.


 

 

 

 

3.

전세계적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한다고 하는 생말로. 생말로 성벽 내부에 숙소를 잡고 2박 3일을 있었다. 자동차도 없이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와서 성벽내부와 근처 해안가를 따라서 산책을 하루종일 하거나 점심과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일이 우리의 일과였다.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드라마를 같이 키득거리면서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 열렬하게 시청했고 아침이면 일어나서 호텔의 바로 옆에 있는 성벽문을 넘어서 바닷가에 물이 얼마나 찼는지 살펴보곤 했다.   

 

4.

골목을 걷다 창문너머로 평범하지 않은 풍경의 카페를 발견했다. 수 백개의 인형을 수집해서 빼곡히 카페 내부에 전시해놓은 곳인데 대대로 이어지는 곳이라고 메뉴판의 설명에 써있었다. (그들의 넘치는 열정으로 빈티지 인형들을 모은 것이라며! )뉴욕 그리니치에서 가 본 어느 역사적인 카페처럼, 코팅지로 된 소박한 메뉴판에 그 장소의 유래를 설명해 놓았다.  

이 카페는 이름마저도 특이하고 아주 길다. 구글맵에도 그렇게 저장이 되어있었다. Le café du coin d'en bas de la rue du bout de la ville d'en face du port. La Java. 천장에는 선반을 일부러 설치해서 그 위에 인형들을 앉혀 놓는가 하면 창문의 모든 테두리에도 수많은 인형들이 붙어있었다. 인형들이 다 손으로 만들어졌을 오래된 원단을 걸치고 있는 것도 재미있고, 빈티지인형 특유의 오싹함 마저도 이 공간에서는 집합체가 되어서 다른 이미지를 줬다. 바에는 쇠사슬을 이어놓은 그네가 설치되어있는데 동생이 유독 이 자리를 탐냈지만 첫째날에는 자리가 없었고 다음날 저녁에 다시 카페를 찾았을 때에는 바를 마주보고 그네에 앉을 수 있었다. 키르와 사과주를 첫 잔으로 시켰다가 바 직원이 앞에서 자주 만들던 칵테일을 보고 그것도 시켰다. 얼음에 갈색 설탕을 듬뿍 쏟아넣고 라임을 짜고 럼을 넣은 술. 늦은 밤 호텔까지 팔짱을 끼고 돌아온다. 

 

 

 

5.

생말로에서의 첫 끼니로 해산물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식당에서 생선수프와 홍합탕, 대구살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맛집을 찾는 것 보다도 손바닥만한 생말로 요새의 내부에서 걸어다니다가 마음에 든 곳들을 눈여겨놨다가 다음번 끼니 때에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당당하게 우리에게 다가와 조개껍질을 선물로 하나씩 쥐어줬던 어린소녀가 우연히도 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반가워서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이 소녀는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하는 모양이었는데 대화 내용이 어쩐지 귀여우면서도 어른스러웠다.  

- 뭐 시킬꺼야, 골랐어?

-나 근데 글 못읽잖아. 

-아 맞네. 

 

 

바닷가 산책을 하다가 꽁꽁얼은 손을 따뜻하게 녹이려고 들어간 동네의 유일한 카페에서 긁는 복권을 샀다. 한번도 당첨된 적은 없지만 재미로 여행중에 몇 번 사봤다. 진짜로 절대 당첨이 안되더라.
성곽 도시에 어울리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옷가게인데 행거가 원형의 벽모양을 따라서 설치되어 있다.


파리에 돌아와서는 생투앙 벼룩시장에도 데려갔다. 마리옹도 만나서 함께 산책을 했다.  
바스티유의 어떤 피자집의 창고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스픽이지 전통의 바. 여기도 데려가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다. 오이향이 진하게 나는 특이한 시그니쳐 칵테일을 시켰다. 여러 국가의 지폐가 진열장 기둥에 붙여져 있었는데 동생의 지갑에 있던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넸다. 실제 돈을 붙이려면 사용할 수 없게 싸인을 해서 줘야 한다고 해서 한글로 우리 왔다감~ 같은 말을 써넣었다. 파리 번화가의 14유로짜리 칵테일을 파는 곳에서 디델리 여고시절의 감성을.     
일요일 오전에 샤를드골 공항에 데려다 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먹은 중국식 훠궈.  


 

금요일에 퇴근하고 야간개장에 맞춰서 들어간 루브르. 원래는 직장동료인 로리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딱 퇴근시간에 미팅을 하자고 하는 셰프와 팀원들은 전부 남게 되었고, 30분이 더 지나서야 동생과 함께 1호선을 타고 루브르로 향했다. 그동안 여러번 와본 곳이지만 점점 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닌텐도에 연결된 오디오가이드를 하나 빌려서 동생이 읊어주는 대로 한국어로 설명을 들으니 꽤 편하기도 했다.    


My favorite thing in Paris. 주말의 벼룩시장. 작가도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그림은 길거리의 쓰레기통에 나름 진열이 되어있다.


6.

오랜만에 찾아간 영화관. 고레다 히로카즈의 영화, L'innocence를 드디어 봤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했다. 원제와 한국어 제목은 괴물이었다. 영화의 대사 중에는 괴물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오기도 했다. 음악은 찬란하게 아름다웠고. 영화에서 관점이 여러번 바뀌지만 이전의 누군가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것이 오해였음을 알게되는 장면들이 여러번 나온다. 인간은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좌석을 예매하는데 L'innocence가 아닌 Silence로 직원이 예약을 해버렸고 다시 취소하려해도 내 회원카드로는 전산상 오류가 나서 발권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음절 ce가 비슷하지 않냐며 소탈하게 웃었고 자신의 회원카드와 동료직원의 카드를 건네받더니 그걸로 내 티켓을 결제를 해줬다. 이렇게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어쩐지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이라면 그럴 것도 같아서 웃음이 났다.   

한슬이네 부모님이 여행을 오시면서 챙겨주고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과 진미채 반찬. 폴과 쟌느 커플. 쟌느는 최근에 본 사람들 중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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