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상 점심으로 야채오믈렛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싸갔지만 금요일 즈음에는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사먹었다. 케이마트에서 김밥이나 닭강정을 사먹을 때도 있고, 빵집에서 키쉬를 먹을 때도 있고, 베트남식당을 가기도 했다. 쌀국수는 국물이 단 맛과 조미료가 강한 맛이었는데 보분은 괜찮았다. 점심장사만 하는 곳인데 의외로 모든 직원들이 베트남인들이었다. 그들끼리 말하는 베트남어를 알아듣기도 했고, 프랑스어에 베트남어 억양이 강한 것도 들렸다. 샹젤리제에 있는 베트남식당이라 그런지 차이나타운의 가게들과는 다르게 아주 모던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근처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손님들은 셀린백이나 막스마라 코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쳐놓았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쉽게 눈에 띄는 명품브랜드도 파리에서는 신논현이나 압구정쯤 되는 이 동네에 와야 좀 보였다. 여기서는 포크/나이프, 젓가락/숟가락처럼 전형적인 짝꿍끼리의 셋팅이 아닌 포크와 젓가락이 한쌍처럼 냅킨에 감겨 테이블에 놓여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절반은 젓가락으로, 나머지 절반은 포크로 면을 먹고 있었다. 젓가락만 주면 포크를 달라고 하는 손님들, 아니면 반대로 젓가락을 달라고 하는 손님들을 떠올려보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우리집에온 프랑스 사람들이 아시아 음식이 익숙하지 않거나 젓가락질이 서투를 땐 포크를 꺼내주기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사는 파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국적이 나는 제일 궁금하기도 했다. 아시아 사람들은 웬만하면 불어를 해도 억양으로 한중일을 알아차리기도 했고 베트남과 태국은 같이 살부딪히면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얼굴의 선 형태만 봐도 어느정도 구분이 되었다. 참 신기한게 동그랗고 키작은 동남아 아저씨들도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눈코입의 인상이 전혀 달랐다. 그 둥그스런 와중에도 태국은 조금 날렵하고 뾰족한 느낌이랄까. 내가 만나본 흑인들은 카메룬, 세네갈, 토고, 기네 사람들이지만 구분하기에는 여전히 감을 못잡겠다. 새로온 봉제사는 대충 찍어서 세네갈 사람임을 맞췄다. 파리의 봉제사하면 터키와 쿠르드 사람들을 빼놓을 수도 없는데 얼마전엔 시빠쓰라는 쿠르드말도 배웠다. 그들은 이싼, 아싼처럼 싼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아싼은 이스탄불의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10살 때 처음 사부님을 따라다니면서 옷 만드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처음에는 딱딱한 골무를 중지 손가락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고정시켜놓고 바늘을 슬 밀어넣는 동작을 몸에 배도록 했다고 한다. 오로지 옷만 만들어 온 그들의 40년, 50년의 인생을 비교하면 겨우 대학교를 입학해서야 옷을 배우고, 업계에 몸담아 왔던 시간들 마저도 참 작아져 보였다.
2.
한국에서 온 팥이다. 적두라고 적혀있었고, 프랑스에서 보던 강낭콩처럼 생긴 팥의 모양이 익숙해져서 원래부터 내가 알던 팥의 모양이 저렇게 생겼는지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한국의 진짜 팥으로 모모코의 아주키레시피를 따라 단팥을 새로 만들어놨다. 프랑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잼인 밤크림을 눈에 보일때마다 사모으다보니 여러 브랜드의 제품들이 집에 쌓였다. 식료품점에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밤크림을 눈여겨보다가 리옹보다 더 남쪽에 있는 Ardèche라는 지역에서 나오는 밤이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인인 프레데릭이 아르데쉬에 사는데 피에르의 엄마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공주밤이 유명한 것과 비슷하다고 떠올려보면 재미있기도 했다. 인터넷에 더 찾아보니 수확철에는 무려 밤축제가 열렸다. 올 가을에는 내가 좋아하는 밤을 잔뜩사러 아르데쉬에 갈 것이다.
3.
거실에 둘 테이블을 사던 날.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던 벼룩시장을 눈여겨놨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에 다시 오게 된다. 큰 가구를 살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나 바로 마음에 들 테이블을 살 수 있을지는 몰랐다. 50년대의 영국산 부드러운 컬러의 나무로 된, 양쪽으로 접히는 테이블이다. 15분간 예약을 해놓고 한바퀴 돌면서 조금 더 고민하는동안 아주머니는 기름칠을 더 해놓았다고 했다. 구매를 결정하고 현금인출기를 찾아서 돈을 뽑아오는 동안에는 포장이 다 되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가려고 했으나 예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서 우버를 불러 피에르만 혼자 테이블을 가지고 집에 돌아갔고 나는 더 벼룩시장을 둘러보다가 아프리카 장바구니도 사고 쥬얼리도 더 샀다. 오후 2시에 맞춰서 샹젤리제까지 피팅시간에 딱 맞춰서 출근을 했다.
4.
단연코 파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액티비티인 벼룩시장. 1월에도 주말마다 다른 볼일이 있는 동선에 맞춰서 시장을 하나 돌아서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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