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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den

가져온 카메라/Europe

by Simon_ 2023. 8. 13.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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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입된 통신사가 유럽 내에서는 무료로 25기가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브뤼셀을 떠날 때가 되고나서 알게 되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로지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에 앉았을 때에만 인터넷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메일도 덜 자주 확인했고 인스타그램도 볼 일이 없었다.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기만 무음 상태를 해지해 놓았다. 유심도 그대로 인터넷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유럽의 나라들의 사이가 더 가까워 보였다. 프랑스의 체크카드로 여행 중에 결제할 때에는 같은 유로를 사용하기 때문인지 국경을 넘었는데도 수수료 하나없이 딱 쓴 만큼만 빠져나갔다.

헤이그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펠리페네 집에서 거리가 좀 더 가까워서 헤이그로 도착하는 티켓을 끊었다. 버스의 도착시간이 나온 스크린샷을 메신저로 보내니 펠리페가 회사가 헤이그에 있으니 퇴근하고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버스가 30분이나 늦게 도착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버스터미널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고 농담을 했다. 내려서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저 멀리서 펠리페가 보였다. 4년만이었다. 반가운 그와 진한 포옹을 했다. 건축가답게 헤이그의 길을 걷는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구경시켜줬다. 언젠가 다비드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여행은 커녕 건물만 계속 보여줬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드디어 그 신나는 건축 여행에 몸을 실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열차를 타고 펠리페와 여자친구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지금은 이 여자친구의 이름을 까맣게 잊었다. 기차역 앞에서 자전거 주차장에 가서 그의 자전거를 찾았는데 세상의 모든 자전거를 쌓아 둔 것처럼 빼곡히 자전거로 가득찬 곳이었다. 이렇게나 큰 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은 처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날 아침 집에서 나왔는데 시내에 나오기까지 그 동네에서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두발로 걸어다니는 유일한 인간이 되었달까. 그날 밤 본 무수한 자전거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사람들은 정말로 자전거를 많이 탔다. 한적한 레이든만 그런 것도 아니고 관광객으로 정신없는 암스테르담에서도 그들의 자전거는 쌩쌩달렸다. 조금 전에 구글링해보니 “In a country of 17 million people, there are 22 million bikes” 라고 한다.  Why dutch use bike that much? Cycling is a Way of Life. Riding a bike all over the city to classes, the shops, out to dinner or to work is neither considered exercise nor a chore for the Dutch. Cycling is a mode of transport and the Dutch will often ride their bikes to the gym or to play sports and then ride home!

 


암스테르담만 여행하려고 했는데 첫날엔 펠리페의 동네인 레이든에만 있었다. 덜 번잡한 한적한 일요일 아침같은 동네였다. 아침으로 치즈가 올라간 빵을 사먹었다. 여기는 프랑스에서만큼 빵집이 많지는 않았다. 성당 앞의 코너에 위치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중심지에서 먼 곳에 있어서 동네 사람들만 오는 곳임이 분명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듯 싶었다. 카푸치노를 마셨다. 

시내에서 돌아다니며 가게들을 구경했고 또 다른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한잔 더 마셨다. 집에 돌아오니 펠리페가 아직 미팅을 하고 있었고 나는 짧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집에 남아있던 라자냐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눠먹었고 피에르가 보내온 우리집 부엌인테리어를 같이 봐주기로 했다. 거대한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피에르가 나름 정확하게 가구 웹사이트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놓은 수치를 가지고 건축 프로그램에 뚝딱 우리 부엌을 만들어 놓았다. 여러 구조물들의 가로 세로 너비를 재빠르게 읽었고, 위에 이어지는 가구들은 복사, 붙여넣기를 해서 순식간에 포토샵을 하는 것처럼. 그의 연습장 같은 프로그램의 파일 안에는 우리의 부엌 바로 옆에 다비드네 집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멀리 떨어진 친구네 집이 이웃집처럼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레이든에서 그렇다 할 규모의 박물관은 없었는데 풍차 박물관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풍차의 몸통을 좁은 계단을 따라 5층정도 올라가면서 보는 전시였다. 전시라기 보다는 풍차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스리랑카의 찻잎 공장, 프랑스 남부의 향수 박물관도 가봤지만 제일 아쉬웠던 건 기계들이 전부 생명이 다해 가만히 유골들처럼 전시장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는 밖에서 보이는 거대한 풍차 날개가 바람에 떠다니며 회전하는 동안 안에 있는 구조물들이 움직이는 동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물론 방아찍는 기계와 회전하는 기계들을 살짝 떼어놔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풍차 날개가 만드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실감할 수 있었다. 아주 아주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은 반드시 계단을 등지지 말고 마주보고 내려가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레이든 정도 규모의 마을에는 풍차가 한 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의 테두리에는 풍차들이 여러 개 띄엄띄엄 있었는데 그 외곽에는 얕은 강물도 둘러싸고 있었다. 이 풍차 박물관에서 본 오래된 지도는 구글맵에서 보는 윤곽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펠리페가 예상보다 미팅이 많아져서 저녁이 되어야 같이 구경을 나갈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있었던 오래된 성곽에 구경을 갔다. 레이든 동네의 외부를 높은 곳에서 볼수있는 곳. 수백년은 같은 자리를 지켰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중심에 있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파스타도 먹었다. 네덜란드어를 좀 더 공부하라고 핀잔도 줬고, 영어로만으로도 일상생활이 된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엔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이미 불어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데도 여전히 뻥 뚫리는 속 시원함은 없으면서. 펠리페는 콜롬비아 사람이라서 태어난 나라는 한국과 지구 정반대 쯤에 있었지만 외국인으로써 이민 1세대로 홀로 유럽 국가에 와서 학위를 따고 직장인으로 세금을 내기 시작하고 살아가는 처지는 비슷했다. 그래서 어떤 감정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눈짓 마저도 서로 통했다. 재즈바에서 체스를 뒀다. 혼자 여행하다가 들렸으면 너무 좋았을 그런 재즈바였다. 혼자 온 손님이 많았고, 스티븐킹의 책을 읽던 여자도 있었다. 설터 소설의 글이 생각나는 그런 저녁이다. 

 

같은 날 밤 아노드는 첼시 근처 친구의 작업실에 있었다. 그가 그곳을 나섰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그는 동쪽으로 걸었다. 그들은 저녁 내내 얘기를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저녁이었다. 친밀하고 풍성하고 끝이 안 나는 대화. 그렇게 얘기해도 아무도 지치지 않는. 그는 디킨스 풍의 사람이었다. 먹고, 마시고,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남의 재능을 평가하고, 바글거리는 도시 속에서 헤엄을 쳤다. 그의 외투 깃은 세워져 있었다. 보도엔 아무도 없었고 철제 셔터를 내린 가게들은 어두웠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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