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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huile

가져온 카메라/France

by Simon_ 2020. 6. 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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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은 카메라를 챙겼어야 하는데 이틀만에 일사천리로 계획해서 출발한 여행이라 카메라는 여전히 파리에 있었다. 아이폰으로 찍고 보정은 비슷하게 했지만 빛을 담아내는 광각 자체가 좁아 어쩐지 사진의 깊이가 부족한 기분이 들고 아쉽다.

 

Pierre, Xavier, Greg. 프랑스 남자 셋과 나. 넷이서 금요일 오후에 떠났다. 우리가 하룻밤 지내고 온 Refuge는 Auvergne-Rhône-Alpes지역의 Lathuile이라는 동네의 산에 위치해있는데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물었을때 아무도 이 등산코스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작년 여름을 안시에서 보내면서 근처의 Semnoz나 Clusaz같은 더 유명한 관광지들은 이미 다 다녀왔다. 

피에르가 Haute-Savoie 공식홈페이지에서 한군데 골라서 예약한 것이다. Refuge는 한국말로는 산장이라는 개념이다. 펜션처럼 게스트에게 전체를 빌려주는 것보다 게스트하우스처럼 도미토리형식이면서 주로 산중턱 정도에 위치해 있다. 등산객들이 가볍게 식사만 하고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렇게 설명을 적어놓고나니 주막이 아닌가. 

전화로 예약을 하면서 머릿수만 네 명이라고 알려주고 당일에 도착했더니 Refuge에선 우리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운영하시는 분들은 보통은 연세가 꽤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이 산장은 내 나이 또래의 젊은여자 두명이 묵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Clara라는 이름의 여자분이 주인이다. 

 

안시에서 출발해서 한시간정도 달리면 Lathuile에 도착한다. 등산코스이기도 하지만 차를 끌고 올라갈 수도 있는데 길이 험했다. 홈페이지에서도 걸어서 2시간, 차를타면 45분이 걸린다고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중간에 내려서 차라리 걷겠다고 하다가 자비에가 하도 말려서 차에 다시 올라탔다. 텅빈 주차장, 손님이 아무도 없는 산장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산으로 향하기 딱 좋은 유월인데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통행금지령이 풀리고 영업을 재개하고나서는 우리가 첫 손님이다. 2층침대가 6세트 놓여있는 오두막에 우리 넷 뿐이었다. 위생규제 때문에 얇은 플리스틱 덮개가 씌워져 있었고, 우리는 그 위에 침낭을 깔았다. 

 

 


Refuge 앞쪽에 마을을 향하고 있는 들판에 양떼가 한 무리, 뒤편의 들판에 또 한무리가 있고, 작은 목장에서 치즈를 생산한다. 지퍼가 앞중심에서부터 발끝까지 연결된 작업복 (Combinaison)을 입고계시던 아저씨가 딸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해질녘 무렵까지 노동을 하다가 (프랑스의 여름은 10시는 되야 해가 진다) 마지막으로 호스를 정리하고 우유통을 뒤집어 놓으면서 마무리를 했다. 통나무집의 1층에는 우유와 치즈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2층의 테이블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 있다. 자정까지 말소리가 들리더니 친구분들은 술을 얼근하게 마신채로 4X4를 힘차게 몰고 언덕을 내려가셨다. 아침 5시부터 일을 하신다고 Clara가 알려줬는데, 다음날 9시에 일어나서 나왔을 때 양들이 이미 어제와 다르게 한뼘 옮겨진 들판에 있었다. 아주 일찍 일어났으면 양떼가 이동하는 광경도 봤을텐데.

대신에 지난밤 별이 빼곡한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 봤다. 산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애들이 담배를 핀다고 나갈 때마다 따라가서 벤치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봤다. 이날 밤의 하늘은 그랜드캐년의 숲속 공원에서 묵으면서 본 밤하늘만큼 별이 많았다. 산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고요한 별하늘을 보고, 다음날 신선한 아침공기를 맡을 수 있다. 

 

 

이 산장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사진 속 풍경이나 등산코스도 괜찮아 보였지만 저녁과 아침식사, 숙박이 포함된 가격이 1인 29유로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이기도 했다. 숙박만 하고 가면 5유로였다. 한달동안 묵어도 150유로 밖에 안 든다면서  Xavier에게 시내에 있는 방을 빼고 여기 잠깐 있다가 가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산장에서의 저녁은 양은 푸짐했지만 퍽퍽한 빵과 버터가 나왔고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Clara와 여자 둘 앞에는 그들이 챙겨온 견과류가 들어간 통밀빵과 BIO 버진 올리브유가 있었다. 우리는 전식으로 수프를 먹고 그녀들은 샐러드를 먹었는데 나는 단번에, 아 게스트용과 다른 식사를 하는구나. 생각을 했고, 내가 짧은 순간에 여기까지 관찰을 하는동안 피에르는 눈치없이 샐러드 그릇을 집어와서 샐러드 먹을래? 라고 물었다. 내가 “이건 쟤네들꺼야.” 라고 속삭이니 “정말?” 물으면서 다시 돌려놨다. 

디저트로는 사과크럼블이 나왔다. 그녀들은 블루베리가 들어간 케익을 먹었는데 식사를 마친 접시를 뒤집어서 그릇 뒷편의 움푹 파진 부분에 올려놓고 먹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여쭤보니 예전엔 다들 그렇게 했다고 한다. 식기세척기도 없었을 때였고, 요즘엔 그렇게 하면 식사 예절에 벗어난 느낌이 들기도 하고(이렇게 먹기가 좀 머쓱하다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산드라도 어렸을 때엔 그릇을 뒤집어서 디저트를 먹는걸 좋아했다며 웃었다. 푸딩처럼 액체가 조금 섞인 종류는 접시 둘레덕분에 한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평평하게 올려져 있었다고 했다. 어린이들이 접시를 뒤집으려면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야 하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집에 살때는 엄마가 매일 아침 숭늉을 끓였다. 식사를 마치면 빈 밥그릇에 숭늉을 부어서 마셨고, 찬물도 그렇게 마셨다. 언젠가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첫날에는 산장의 뒤쪽 언덕에만 잠깐 올라갔다 왔고, 다음날에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로 했다. Xavier는 작은 언덕을 오르면서 너무 신난 나머지 어린애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발목을 삐었다. 엄청나게 부풀진 않았지만 등산을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서 다음날에는 산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고 내가 가져온 만화책 2권과 필립달렁베흐의 소설책을 쥐어줬다. 

 

프랑스 남동쪽 지역은 웬만큼 올라가도 저 멀리 높은 몽블랑이 항상 지키고 있다. 우리가 오른 산 역시도 따뜻한 6월 중순인데도 산허리의 그늘진 부분에는 한겨울의 녹지않은 눈이 그대로 걸쳐있었다. 산골짜기의 강줄기가 세로방향으로 길게 높은 산맥에서부터 내려오는데 눈이 많이 쌓여있는 시기에는 눈밭 아래 뭐가 있는지 겉으로는 알 수 없으니 강에 빠지지 않도록 유난히 더 조심해서 등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세로방향은 자연이 만든 산줄기이며, 비스듬한 가로방향으로 산을 타고 오르는 길은 인간이 만든 등산길이다. 갈고 다듬어서 만든 길은 아니지만 덤불숲이나 키작은 나무들 사이에 좁게 길이 나있어서 등산을 할 수 있다.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아주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옅은 초록빛으로 길이 보인다. 초반에는 그 길을 찾지 못해서 무작정 정상을 향해서 올랐는데 젖은 나뭇잎에 신발이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힘들게 걷다가 다시 등산코스를 찾아서 더듬어 돌아왔다. 인생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때보다 숲을 보면 더 잘 알 것 같지만 몸을 던져 직접 들어가봐야 다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다.

 

산장의 고도가 1700m, 등산코스를 올라서 정상에 올랐을때의 높이가 2300m였다. 한국에서보다 유럽의 하늘이 유난히 낮으니 이미 산장에서도 눈높이에 구름이 떠 있었는데 정상에서는 비행기를 탄 것 처럼 온통 구름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뾰족하게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구름이 가득한 풍경, 눈으로 무늬를 그려놓은 것처럼 얼룩이 생긴 산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봐도 금세 구름이 움직이면서, 햇빛이 반사되면서 새로운 빛과 시선을 만들어 낸다. 내가 아침에 책을 읽는동안 남자 셋이서 바게뜨에 치즈와 햄을 넣어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준비했고, 정상에 떨어져 앉아서 점심으로 먹었다. 

     




낯선사람이 양떼 주변을 조금만 지나가도 양을 지키는 개가 곧바로 짖는다. 한참을 가만히 있으면 개가 짖는 것을 멈추고 곤두세웠던 신경을 조심스럽게 내린다. 어떤 의미의 행동양식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양들이 무리지어서 딱 붙어있다가 동시에 바닥을 향해서 머리를 숙인다. 꼬리잡기처럼 뒷꽁무니를 따라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가 수없이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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