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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oli

가져온 카메라

by Simon_ 2025. 6. 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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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일정은 <로마 인 - 나폴리 - Sant’Agnello - Sorrento - Capri - Positano (취소) - Vico Equense - Salerno - Amalfi (취소)  - Maiori - Minori - Vietri Sul Mare - 나폴리에서 아웃>

지도에서 보면 전부 나폴리 근교 해안 정도로 봐야 할 만큼 나폴리에서 1시간 내외인 곳들이다.  

가장 유명한 세 곳은 소렌토/포지타노/아말피 이정도인데 카프리에 도착해서 너무 관광지화되어 인공적인 모습에 조금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지타노가 궁금해서 가보려고 했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버스에서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음을 접고 기차를 타고 근처인 Vico Equense로 가기로 한다. 기차역에서 티켓을 끊는다. 며칠 지나고 입을 트고 지나니 이탈리아어로 그정도는 주문 할 수가 있는 수준이 되었다. Vico말고 Corso라는 기차역 이름을 병기하는데 옆에서 마리옹이 Corso라고 말하니 역무원 아저씨가 자꾸 나에게 그 전에 내가 입 밖으로 꺼낸 Vico라는 이름으로 말하게 했다. 아마 프랑스의 코르시카 섬의 이름을 따와서 바꾼 것일텐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깝게 봤을 이름이니까.     

 

아말피도 마음은 먹고 버스정류장에 나왔으나 아말피에 가는 사람들이 버스타는 시간대가 되니까 우루루 몰려왔기도 했고, 아말피에 가기 전의 동네 이름인 Maiori라는 곳에 도착하는 버스가 먼저 와버려서 그냥 빠른 결정으로 그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론적으로는 Maiori와 Minori에서 보낸 하루가 너무나 좋았다. 이곳들의 풍경도 굉장히 좋았는데 하루종일 더운 날씨에 밖에 돌아다니는데 카메라를 들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사진작가들은 카메라가 없으면 외출도 하지 않았을텐데?)지금와서 로마와 나폴리에서 멈춘 카메라의 사진들을 보니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이후엔 별로 없어서 좀 아쉽다. 휴대폰으로 찍기는 했는데 인스타나 스레드에 올릴 정도지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이 아니다. 다음 여행엔 카메라를 더 들고 다녀야겠다.

 

 

 

 

2.

구불구불한 골목을 버스로 달려 Maiori에 도착하자마자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려 바닷가에 잠깐 앉아있었다. 여행길의 행복한 아침처럼 카푸치노를 마시고 크로와상을 먹었다. 프랑스의 빵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피스타치오 크림이 모든 걸 살려내는 셈이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Sentiero di limone를 찾았다. Maiori에서 Minori를 잇는 트래킹코스인데 왼쪽에는 푸른바닷가와 오른쪽에는 드넓은 레몬밭이 펼쳐지는 풍경이 이어진다. 레몬이 나무 아래로 주렁주렁 달려서 코스에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중간에 쉬다가는 농가에 들리면 레몬으로 온통 둘러쌓인 곳에 들어가게된다. 시골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레몬 프린트의 코팅이 된 테이블보가 씌여있다. 100프로라는 말을 붙이는게 무의미할 레몬 착즙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레몬도 킬로당 아주 저렴하게 팔았는데 그건 사올 수가 없었고 레몬잼을 맛보여줘서 작은걸로 하나 샀다. 여행을 하고있던 밀라노에서 온 청년 크리스티안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리옹에게는 불어로 설명해줬다.

Sentiero di limone의 길을 한참 올라가다 중간 지점에서 산으로 향하거나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왔는데 조금 더 구경을 하자고 산으로 올랐다. 트래킹길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레몬밭이 나왔다. 평생동안 볼 레몬들을 하루에 다 본 것 처럼 이렇게나 많은 레몬은 태어나서 본 적이 없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노란색의 레몬. 초입에서 본 당나귀가 실제로 레몬박스들을 이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일꾼 한 명이 당나귀 세 마리를 끌고 다녔다. 그는 당나귀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농장 앞에 줄지어 레몬상자들을 올려놓았다. 당나귀의 좌우에 고정시켜놓은 레몬상자를 들어올리는데 그 몸짓으로 무게를 직감할 수 있었다. 족히 쌀포대 20키로는 되보였다. 당나귀에게 밧줄을 고정시키는 자연스러운 손놀림이 인상깊었다.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 처럼 절도있게. 수천번, 수만번은 반복했을 그런 익숙한 손동작의 모습.

Minori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Sentiero di limone길을 다시 타고 산책해 걸어왔다. 이미 걸어온 길을 돌아가는거라 중간지점부터는 익숙한 팻말들이 보였다. 초입에 미국인 가족과 마주쳤는데 중년 남성에 우리에게 물었다. 정상에 거의 다 왔냐고, 나는 ‘Not at all’이라 대답했고 모두 웃음이 터졌다. Not even half :-) 그렇지만 마리옹은 조금만 가면 내리막길이 있고, 그다음엔 오르막길이 있고, 주절주절 친절하게 달래줬다. 사실 이 무더운 날씨의 오르막길에서 마리옹이 나도 이렇게 어르고 달래서 멀리까지 걸어온 것이기도 하다.         

 

3.

Minori의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아이스크림집을 찾다가 해변가에 있는 바에서 레몬슬러쉬를 먹었다. Granita al limone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점원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마리옹은 여행내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하는 것을 궁금해했다. 내가 누구에게나 쉽게 대화를 걸기도 했고, 특히 올해 초에 왔던 것보다 이탈리아어를 입 밖으로 내기도 하고, 일단은 동양사람이기 때문이다. 점원은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었고 점원의 엄마이자 해변가 바의 사장님인 할머니가 테이블에서 수박을 드시다가 일어나 북한사람은 여행을 할 수 없고 얘(?)는 남한사람이 맞다고 의견을 냈다. 뭐 그렇다면야... 그 때는 두시간 뒤에 이 할머니와 수박을 나눠 먹을 줄을 몰랐다. Anguria

남한에서 온게 맞다고 확인을 해드리고 나서 할머니는 내가 착용하고 있던 귀걸이가 예쁘다며 대화를 시작하더니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서 이야기를 했다. 여행을 하다 만난 시골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걸 봐오니 그 나이의 할머니가 영어를 구사하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 세대에 대학을 나오고 사업을 여러개 해온 듯 해보였는데 가장 놀라웠던 건 지금도 이제 또 어떤 일을 벌릴지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30분쯤 지나자 영어로 말하는 것이 지치셨는지 이탈리아어로 스위치해 이탈리아어로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나서 이렇게나 인텐스한 청취는 처음이었다. 뭐라도 대답은 해야하니까 최대한 집중해서 들었고 한 55프로 정도 알아들은 듯 한데 그 와중에 마리옹에게 짬짬이 번역도 해줬다. 할머니는 해변의 바에서 일하는 남자직원에게 온갖 심부름을 시켰다. 내가 복숭아 이야기를 하니 복숭아도 냉장고에서 하나 꺼내오라 시키고 단어를 적어준다고 종이와 연필도 가져오라 시켰다. 할머니가 약 드실 시간이라 물 한컵과 알약을 세 개 커피컵 소서에 담아서 가져오기도 했다. 내가 이 남자 직원에게 말을 건네니 ‘우와 얘 이탈리아어 하네요?’라고 할머니에게 말하고 할머니는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탈리아어도 하고 프랑스어도 할 줄 알아’라고 대답했다. 파리에 돌아와서 다시 다음번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 전까지 꾸준히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더 생겼다. 

 

최근에 배워서 아직 뇌리에 남아있는 조건법으로 짧은 문장을 하니 내가 이탈리아어를 잘한다고 큰 착각을 해서 그들이 대답을 엄청나게 빠르게 하면 전혀 못 알아 들은 적도 종종 있었다. 살레르노의 올드타운의 메인 골목인 Mercanto에 바가 하나 있는데 우리가 고른 와인이 그렇게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된 건물이 좋았던 곳이다. 계산을 하는 동안 테이블과 가구들을 눈에 담고 있는데 사장이 You like? 라고 물었고 내가 질문을 영어로 막 쏟아내니 ‘천천히 플리즈...’라고 대답해서 반대로의 비슷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4.

이탈리아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몇가지로 추려진다. Friarielli 시래기나 무청같은 맛이나는 야채. 여기서도 그렇게 데치거나 삶아서 요리를 한다. 마리옹이 하도 시금치라고 우겨서, 언젠가 식료품점에서 확실하게 물어봤다. Friarielli를 포함한 세가지 나물이 있었는데 셋 다 시금치도 아니고 세 종류 다른 나물이었다는.. 프리아리엘리는 피자에도 넣고 빵에도 넣어 키쉬를 만든 것도 봤다. 한번은 소세지에 넣고 만든 것도 봤는데 맛보지는 못했다. 

 

Fiori di zucca 호박꽃. 예쁘기도 하고 맛있기도 한. 이것도 피자에도 올라간다. 보통 토마토소스가 아니라 크림베이스에 올라가서 토마토소스보단 크림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다. 

 

리코타 치즈도 호박꽃과 떼놓을 수 없는 조합인데 밀라노에서 제일 좋아하는 빵집에서는 리코타와 애호박을 넣은 고로케가 있다. 파리에서 사먹는 리코타치즈에 비해서 고소한 풍미가 훨씬 높다. 이탈리아 마트의 치즈 코너에서만 사도 훌륭할 정도라서 장을 볼 때면 리코타 치즈를 항상 구매했다. 이틀 연속 갔던 살레르노 동네마트의 치즈코너 남자직원이 그 커다란 리코타치즈 덩어리를 둘이 다 먹어치우고 다음날 또 리코타치즈를 사러 온 나에게 '너 이거 좋아하나보다?' 라고 물었고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가 먹던 것보다 조금 더 가격이 나가는 다른 리코타 치즈를 추천해줬다. 더 맛있다면서. 흔쾌히 그걸로 골랐다. 그에게 프로슈토도 추천해 달라고해서 프로슈토도 조금 구매했다. 

 

마지막은 문어샐러드. 한국에서는 문어요리라고 하면 보통 명절에 남은 문어로 초장을 무쳐서 만든 문어무침이 떠오르지만 올리브유를 두르고 삶은 감자조각 몇 개와 토마토나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이탈리안 문어샐러드는 여름에 딱이다. 

 


나폴리의 풍경. 여기저기 널려있는 빨랫줄과 혼잡한 오토바이. 마라도나의 얼굴이 가득한 곳


 

 

4.

나폴리의 서쪽에 Vomero에 위치한 Castello.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나폴리 시내를 볼 수있다. 그 전에  보메로 자체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지하철처럼 funiculaire/케이블카의 노선이 따로 있었다. 지도상으로 어느정도 보메로 근처에 왔을 때 케이블카 입구가 보였다.(입구마저도 지하철 입구처럼 생겼다.) 이제는 보이면 그 앞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어쩌고 하지 않고 일단 무조건 들어가서 직원에게 묻는다. 

프랑스 가족을 데리고 부산여행을 할 때 송도에서 암남산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반대로 내려오게 되었다. 버스를 타기도 애매하고 정류장에 쭈그려 앉아서 휴대폰으로 남포동으로 가는 방법을 찾다가 카카오 택시를 주문하려는 찰나에 반대편에서 돌아오던 버스기사가 창밖으로 손짓을 하더니 "나한테 물어야지 왜 다들 휴대폰만 보고있어?" 라고 말했고, 나는 "저는 남포동가는데요" 했고, 옆에 있던 다른 여자 두 분은 "안남공원이요" 했는데 "다들 타세요~"라고 했다.  

 

 


호치민에 온 것만 같은 골목의 오토바이들.

 

 

(*이 정도면 사진이 많아서 두 개로 글을 나눠야 하는데..일단 쓴김에.... )

 

 

*나폴리에서 많이 본 건축 디테일, 중문정도에 해당하는 안뜰로 가는 길의 아치의 중심에 달린 조명. 조명 좌우로 이어지는 쇠로 된 커브장식은 조금씩 다르다. 오른쪽 사진- 좁은 골목길에 있는 집들은 대문과 창문이 붙어있다.

*대문과 창문이 붙어있는 이유 *

-고밀도 인구와 제한된 공간: 나폴리는 중세부터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았고, 도시 확장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좁은 골목에 다세대 주택을 빽빽하게 지어야 했고, 건물 하나하나에 많은 가구가 살았어요. 그 결과, **각 가구의 입구(=대문)**와 채광·환기용 창문이 벽에 촘촘히 붙게 되었죠.

- 스팔토(spalto) 구조와 전통 건축 : 나폴리에는 **“bassi(바씨)”**라고 불리는 1층짜리 작은 방들이 있어요. 이 방들은 대개 문 하나와 바로 옆에 창문 하나가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거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창밖으로 바로 말도 하고, 물건도 사고팔 수 있었죠. 창문과 대문이 붙어 있는 건 실용적이기도 했어요. 환기, 빛, 소통, 그리고 감시의 기능까지 다 포함하고 있었거든요.

-사회적 연결과 공동체 문화: 나폴리는 이웃 간의 교류가 활발한 도시입니다. 창문과 문이 가까워야 바로 말을 걸 수 있고, 동네 생활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골목은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사교의 공간이고 생활의 연장선이에요.

 


 

 

이탈리아 남부를 통째로 휘감고 있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주 만난 부겐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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