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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브링리_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甛蜜蜜/영혼의 방부제◆

by Simon_ 2024. 8. 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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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브링리_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풋풋하고 지금보다 감수성 짙었던 대학생시절, 더 다양한 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줬던 그 시절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지금은 이동진 평론가는 유튜브로도 다양한 동영상을 찍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책추천을 더 애타게 기다렸다. 최근에 친구가 가져온 책더미는 그가 추천해준 소설들과 이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천사를 읽고나서 기대도 많이했지만 읽는 내내 미리 그려왔던 감정의 실마리를 잘 풀어낸 것 같아서 기분좋은 안도감도 들었다. 마지막 장에는 저자인 패트릭이 경비원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을 향해 나아간다. 그가 정성껏 쌓아올린 모래성이 파도에 다시 휩쓸려도 아무렇지 않을 그런 사람이 되어, 고요하고 차분하게.

작가가 다양한 인종과 배경과 사연을 가진 동료들을 묘사한 부분들은 다국적의 인종인 봉제사들을 자주 마주치는 나로써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MET의 경비원으로써 그가 본 작품들을 그려내기도 하는데 평범한 주석이 아닌 어떤 삶과 빗대어 예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러함으로써 에세이는 삶에 대한 의지와 예술이 삶에 바라는 구원을 모두 보여준다. 

10년 전 바티칸 여행에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 공들인 노력을 가이드분께 설명을 들었는데 그 당시엔 아직 사회생활도 못해 본 어린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천장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예배당의 이름이 시스티나였는지도 잊고 살았는데, '미켈란젤로가 높은 곳에서 작은 성취들을 이루며 570일을 보낸 곳이라는' 패트릭이 쓴 구절을 읽자마자 그 때의 흐릿한 기억이 돌아왔다. 그 작품이 남긴 기억은 그런 의지같은 것이었다.                     

 


그즈음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일진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p.87

 

한편 사무실에서 처리하는 업무의 지평이 넓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미술관 경비원들이 즐기는 좁은 지평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동료들과 나는 일주일, 40시간 내내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습에 따라 책상에서 책을 펼 수도, 머리를 식히는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두가 그러듯 인터넷을 뒤적이고 책을 읽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점점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을러진 것이다.

그건 정말 공허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대학 졸업 후 ‘현실세계’에 들어서면서 정확히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세상이 현실적인 느낌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맨해튼 중심부를 발밑에 둔 번쩍이는 고층 건물의 권위 있는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마치 컴퓨터 게임에 불과한 것이었다 받은 메일함, 보낸 메일함, 전송.

나는 가끔씩 휴식을 취할 요량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일 걱정을 잊을 구실을 만들었다. 비둘기가 구구거렸고, 세상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와는 별개로, 담배를 피우는 몇 분 동안만큼은 나는 허클베리 핀이었다. 세상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고, 내 의견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강을 지긋이 바라보는 허클베리 핀. 그러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제야 나는 담뱃불을 밟아 끄고 데스크로 돌아가 허클베리의 세계와 그 우아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른바 현실 세계에 다시 합류했다. 그렇게 거의 4년 동안 같은 나날을 반복했다. 하지만 톰의 병세가 점차 나빠지고 큰 현실이 닥치가 더는 감히 돌아설 수 없었다. p.96

 

이곳 출신이 아닌 뉴요커인 나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차원의 사람 구경을 처음으로 경험하던 때를 기억한다. 서민들과 멋쟁이들과 동네 괴짜들이 같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 보이지 않았다. 기분 상해 보이거나 피곤해 보이거나 짜증나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아무도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거나 움츠러들거나 소심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남의 이목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군중 속에 홀로 있는 듯한 모습이야말고 사람 구경의 대상이 되기에 이상적인 뉴요커들의 특성이다. 대학교 때는 이따금 메트의 돌계단에 앉아서 5번가를 따라 끝없이 흐르는 행렬을 관찰하면서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뒤로 돌아 메트의 커다란 입구로 들어가 내가 관찰하던 것만큼 빽빽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군중에 합류했다.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혼자였다가, 섞여들었다가 하는 도시인의 호흡.p.140

 

이럴 때마다 내 안의 그 어떤 우월감을 뽐내고 싶은 충동이 일지라도 억누를 뿐 아니라 그런 충동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고 치부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p.149

 

손 틈새로 금세 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보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 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함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 승객들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p.153

 

월 스트리트에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중간 관리자 포지션이어서 이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았어요. 나 같은 억양과 피부색으로는 그게 최선이었죠. 회사가 합병되면서 해고됐고, 곧바로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됐어요. 그때 좀 거친 동네에서 당좌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업체를 인수했는데 내가 그런 일을 제대로 할 정도로 강하지도, 못되지도 못하다는 결론만 얻었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어요. 평생 모은 돈을 모두 날렸지요.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

그는 충격을 받은 내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정말이지 괜찮아요. 살아 있고, 가족이 있고, 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지금 당장 만나면 악수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괜찮아요.” p.179

 

아침이면 그가 라커 앞에서 런던판 <타임스> 문학 특집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찢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대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읽기 위해서다. p.185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 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스듬이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타나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타나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 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이긴 흙이나 시멘트 등을 떠서 바르는 연장)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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