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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봄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4. 5.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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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주 금요일, 퇴근 후 배낭을 메고 밀라노로 떠난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밀린 사진을 추려서 포스팅을 쓰기로 한다. 책을 하루도 손에 놓은 적은 없는데 독후감을 쓸 수 있는 책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롤랑바르트는 읽히지 않으니 좀 더 읽기 쉬운 얇은 현대소설을 골라서 읽었는데 불어를 읽는 속도도 높았고 그만큼 집중도도 높아서 한동안은 이렇게 읽어볼 것 같다. 주말엔 마음놓고 한국어로 된 책도 읽는 날인데 J가 파리에 오면서 읽고 싶었던 신간들도 마음껏 주문해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이나 사진 서적은 팔레드도쿄의 서점을 향했다. 점심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트로카대로 방향으로 가면 5분도 안되서 팔레드도쿄에 도착했다.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커다란 공간도 있지만 책을 구경하다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 회사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카더의 아름다운 체스판이 있고, 유리관에 담긴, 가격표엔 0이 대부분 2개씩 있는 예술서적 원본판이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이런 책들은 벼룩시장에서 내가 직접 발견하고 사야 제맛(?)이다. 최근에는 Draeger출판사에서 나온 마그리트의 도록을 구매하게 되는데 내가 손에 들고있자 지나가던 어떤 남자가 마그리트를 좋아한다며 책을 훑어보고 싶다고 했다. 사드의 책 제목을 딴 그림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벨기에의 마그리트 미술관에서도 사지 않고 온 도록을, 80년도에 나온 더 근사한 버전이라니.

팔레드도쿄에서 산 책은 뉴요커매거진의 카툰 백과사전이다. 워낙 뉴요커매거진의 표지, 일러스트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그림만 모아놓은 책이 있다니. 무겁고, 조금 가격대가 있었지만 다음날 돌아가서 다시 구매했다. 가끔 펼쳐서 알파벳 순서로 읽는데 카테고리로 구분해서 잘 정리되어있다. 1940년대에 그려진 삽화에서 2000년대의 비교적 최근의 주제까지 다루기 때문에 구시대적 시각과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가치도 있고, 페미니즘처럼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으니. 연대순으로 서사를 정렬하기보다 알파벳으로 편집을 한 이유가 아닐까.

"I like it. It's dumb without trying to be clever" - Warren miller FEB.8 1993             

 

2.

어느날 아침엔 읽고있던 파리지앵 신문의 오른쪽 하단 광고판에서 연극을 발견했다. Raymond Queneau는 카푸신이 좋아하는 작가였고, 언젠가 Zazie dans le métro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책축제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책보다 영화가 아닌 연극을 먼저 보는 건 처음인데, 퇴근하고나서 93지역의 문화센터까지 보고 온 일정이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던 단원들이 중간에 나와서 오리 소리를 내면서 비옷을 입고 관광객 연기를 하는 것도 귀여운 연출. 일반 연극에서 빈티지 의상을 입혀놓아 어딘가 남의 옷을 빌려입은 어정쩡한 느낌이 났다면 가브리엘이 입고있던 60년대 원단으로 맞춤복을 해서 예쁘게 맞아떨어지는 수트, 안감까지 잘 짜낸 호피무늬 원피스와 동일한 원단의 겉옷이 훌륭했다.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Zazie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보게 된 작품이지만 가브리엘이 피갈에서 공연을 하는 가브리엘라로, 아내 역할로 나왔던 여장을 하고 있던 막셀린을 막셀로 부르는 하이라이트에 다다르자 이 연극은 굉장해졌다.

4월 19일, 피갈은 아니지만 헤뻐블릭 근처에 동료 남자직원이 드래그퀸 공연을 하는데 우리 아뜰리에팀이 전부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 의상을 만드는 과정은 회사에서 틈틈이 봐왔지만 실제로 공연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로리와 함께 제일 앞 줄에 앉아 환호하면서 무대를 구경했고 너무 놀라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마티스는 오히려 와준 동료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이날 밤엔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어서 몇장은 아뜰리에에 붙여놓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스트컷은 70이 훌쩍 넘은 태국인 봉제사 할머니와 엉덩이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마티스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국적과 나이와 성별을 무시한 무시무시한 귀여움이라고나 할까.      

Cependant, à la fin du roman, on s'aperçoit que Gabriel semble bel et bien homosexuel puisque sa femme, Marceline, est alors désignée sous le nom de Marcel.

 

        

 

3.

아뜰리에에서의 사진들.

패턴지를 돌돌 말아서 정리할 때에는 마지막에 한번 더 감기 전에 이면지를 끼워서 말아서 이면지 위에 휘갈기듯 내용을 적고 테이프로 붙였다. 패턴 종이에 테이프자국 조차도 남기기 싫을 때 하는 방법이다. 대학교 앞 지성문구사 지하에서 색지나 특수종이를 사서 계산을 하면, 직원이 구매한 종이를 말다가 다른 이면지를 끼워놓고 테이프로 붙여줬다. 아마도 이면지에는 지성문구가 빼곡히 프린트 되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종이를 말아놓고 테이프로 붙일 때에는 마지막 부분에 테이프끼리 45도로 접어서 나름의 손잡이를 만들었다. 인턴때 나이지긋하신 수석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테이프를 붙여놓으셨다. 특히 타인이 펼쳐본다면 어떤 작은 배려가 되기도 했다. 전에 일하던 아뜰레에에서는 베르지니는 내가 접어준 테이프도 무시하고 시침핀을 칼처럼 이용해서 종이가 시작되는 지점에 딱 테이프를 잘랐다. 나도 이후엔 꽉 감긴 테이프는 시침핀으로 자를 수 있게 되었다. 별 것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배운 사소한 기술들.             

 



마르세유에서 숙소에서 먹은 불닭볶음면, 라면

 

 

 


지하창고에 1년 동안 보관해둔 수십권의 책들. 정리하고 분류해서 책장에 꽂는데 한나절이 다 갔다.   


한동안 아침에 읽었던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세계

4.

어느 일요일 아침 11시에 예약을 해둔 건축기행 시내가이드. 불어로 진행되기도 하고 역사나 건축에 관련된 내용들이라 일반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프랑스사람들이 친구나 커플단위로 참여했었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Hector Guimard의 건축을 주제로 골목골목 가이드를 따라 걸으면서 2시간 반동안 여러 건물들을 보게된다. 2시간이 생각보다 순식간에 흘렀다. 파리에서 기마의 유명세가 정점에 있었을 때의 지어진 건물들, 엉성하게 20대에 만든 초기작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곡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비대칭적인 형태를 갖춘 조형미. 발코니를 세 구획으로 나누어서 복잡하게 표현하기도 했고, 낮은 온도에 구운 밝은 색상의 벽돌을 표면에 붙여서 기마 건축물의 대표적인 질감이 되기도 했다.   

세명이서 두는 체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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