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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3. 11. 2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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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드리앉은 파리의 겨울은 일년 중에서도 지독하게 긴 계절이다. 아침의 출근길도 어둠으로 가득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려서 다시 깜깜한 밤을 걷는 것도. 정신없이 하루를 버텨내듯이 보내고 샹젤리제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빛이 쏟아지는 거리가 어쩐지 위안이 된다. 볼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이유로 유난히 관광객들로 가득찬 강남대로같은 곳.

평일에는 회사에서 체력적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이다 보니 주말도 쉬면서 재충전하느라 애를 쓰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불안을 오늘같은 일요일 저녁에는 어떻게 잠재워야 할 지 모르겠다. 늦은 오후에 동네카페에서 책을 잠깐 읽고, 마트에서 장봐서 들어와 노트북을 켠다. 휴대폰에 찍어둔 사진들을 전송해 글을 쓴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벅차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때로는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니까. 첫 아뜰리에에서의 초기에 적응하던 때보다도 훨씬 힘이 부친다. 생각해보면 불어로 전화받는 것도 두려웠던 때였다. 지금같은 시간도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날이 오겠지. 전혀 다른 업계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의 조직에서 일하는 여자친구들인 플로르와 린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자기들도 시즌엔 오밤 중에 잠을 설치는 일도 있다고 했다. 어디든 위로 올라갈수록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나 압박이 있기 마련인가보다. 나는 불면증은 없지만 일생각, 걱정을 하면서 아침에 불쾌하게 잠에서 깨는 일이 최근에 많았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과는 또 다른 층위의 상태같다. 왜냐하면 이직해 온 곳의 막바지에 다다라 쳐내던 지루한 업무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토록 원하던 일을 이제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던 것이기도 하고. 실력도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 같고 하루종일 쓸데없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셰프가 재촉이나 채찍질을 할 때도 견뎌야 하고(이럴 땐 종종 옆자리 다른팀 직원이 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특정한 봉제사가 쓸데없는 질문들로 하루종일 붙잡고 늘어질 때에도 침착하게 대처해야하고(다른팀 직원과 동시에 눈을 마주치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하루에 감사하며 두렵지만 용감하게 도전의 연속을 이어간다. 

      


아기발처럼 생겼던 당근, 껍질채 받은 아몬드를 까서 먹었다. 
꺄날근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영화관에 간날. 켄로치 감독의 The Old Oak.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서 맨 앞줄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영화 후반부엔 둘이 펑펑 울다가 나왔다.  
점심먹을 시간도 없었던 어느날 빨리 케이마트에가서 닭강정을 사와서 일하면서 한 개씩 집어먹었다. 배불러서 마지막 한조각은 남겨뒀다가 다섯시쯤에 먹었는데 식은치킨의 딱 그런 감질맛이 났다.


 

 

2.

11월 4,5일에 있었던 요안과 모르간의 결혼식. 금요일에 캐리어를 끌고 퇴근하면서 기차역으로 바로 갔다. 숲속의 산장에서 1박 2일동안 결혼식이 진행되는데 우리는 이 둘 커플의 최측근에 포함되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얼굴은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좀 붕 떠 있는 상태였다. 모르간의 친척 중에서 느낌이 좋았던 여자분이 있었는데 셰포라 본사 직원이었고, 둘이 말이 잘 통해서 대화를 꽤 오랫동안 나눴다. 그녀는 중학생쯤 되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비디오콜로 이태리어 수업을 듣던 첫째 아들을 보면 내가 다 기특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3.

11일, 12일에는 브뤼셀과 루벤에 다녀왔다. 원래는 로헝이 하는 전시를 보러 가는 계획이었는데 버스시간이 틀어지는 바람에 둘째날에는 루벤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브뤼셀의 아르누보에 푹 빠져서 박물관에 가려고 일부러 일정을 짠 건데 박물관도 공휴일이라 문을 닫았고, 날씨는 파리보다 10도정도 더 낮았고, 비는 하루종일 왔고, 완전히 망친 주말이었지만 그 나름 망친대로 즐겼다. 평소 같았으면 가지 않았을 수제버거집에서 맛있게 햄버거를 나눠먹고 길가다가 와플도 여러번 사먹고, 날이 추우니까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루벤의 학교와 거리.
루벤의 성당 내부. 이렇게 미니멀한 성당은 처음봤다. 장식도 아주 깔끔하고 밝은 톤의 돌장식이 많았다.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브뤼셀 특유의 유리장식. 
박찬욱감독의 회고전을 하던 브뤼셀 시내의 영화관. 브런치로 먹은 팬케이크.  


샹젤리제 라파예트의 트리장식. 헤쀠블릭 거리의 단정한 연말 장식들
계열사 세일때 부드러운 캐시미어니트를 총 7개 샀다. 650유로 하던걸 65유로에 파는데 부드러워서 안 살 수가 없었다. 울과 실크가 조금 섞인 것도 있고, 니트로 짠 나시원피스는 울100프로 였는데 단단한 짜임이 생로랑의 원피스와 굉장히 비슷했다. 한사이즈 큰 걸로 해도 핏이 아쉽긴 했는데 소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샀다.   


브뤼셀에서 마그리트 미술관에 갔다오고 더 푹빠진 마그리트. 옛날 카페의 분위기가 물씬 나던 곳. 대충 얼기설기 놓인 테이블과 가림막도 매력적이었다. 
꺄날쌍막땅 근처에 있는 일본 오브제를 파는 곳에서 발견한 찻잔 세트다. 이 찻잔 세트는 너무 귀여워서 언젠가 사지 않을까. 야간개장을 하는 어느 금요일에 모딜리아니 전시에 예약을 해놓고 결국엔 안갔다. 다음주에 다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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