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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4. 2. 1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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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상 점심으로 야채오믈렛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싸갔지만 금요일 즈음에는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사먹었다. 케이마트에서 김밥이나 닭강정을 사먹을 때도 있고, 빵집에서 키쉬를 먹을 때도 있고, 베트남식당을 가기도 했다. 쌀국수는 국물이 단 맛과 조미료가 강한 맛이었는데 보분은 괜찮았다. 점심장사만 하는 곳인데 의외로 모든 직원들이 베트남인들이었다. 그들끼리 말하는 베트남어를 알아듣기도 했고, 프랑스어에 베트남어 억양이 강한 것도 들렸다. 샹젤리제에 있는 베트남식당이라 그런지 차이나타운의 가게들과는 다르게 아주 모던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근처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손님들은 셀린백이나 막스마라 코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쳐놓았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쉽게 눈에 띄는 명품브랜드도 파리에서는 신논현이나 압구정쯤 되는 이 동네에 와야 좀 보였다. 여기서는 포크/나이프, 젓가락/숟가락처럼 전형적인 짝꿍끼리의 셋팅이 아닌 포크와 젓가락이 한쌍처럼 냅킨에 감겨 테이블에 놓여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절반은 젓가락으로, 나머지 절반은 포크로 면을 먹고 있었다. 젓가락만 주면 포크를 달라고 하는 손님들, 아니면 반대로 젓가락을 달라고 하는 손님들을 떠올려보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우리집에온 프랑스 사람들이 아시아 음식이 익숙하지 않거나 젓가락질이 서투를 땐 포크를 꺼내주기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사는 파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국적이 나는 제일 궁금하기도 했다. 아시아 사람들은 웬만하면 불어를 해도 억양으로 한중일을 알아차리기도 했고 베트남과 태국은 같이 살부딪히면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얼굴의 선 형태만 봐도 어느정도 구분이 되었다. 참 신기한게 동그랗고 키작은 동남아 아저씨들도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눈코입의 인상이 전혀 달랐다. 그 둥그스런 와중에도 태국은 조금 날렵하고 뾰족한 느낌이랄까. 내가 만나본 흑인들은 카메룬, 세네갈, 토고, 기네 사람들이지만 구분하기에는 여전히 감을 못잡겠다. 새로온 봉제사는 대충 찍어서 세네갈 사람임을 맞췄다. 파리의 봉제사하면 터키와 쿠르드 사람들을 빼놓을 수도 없는데 얼마전엔 시빠쓰라는 쿠르드말도 배웠다. 그들은 이싼, 아싼처럼 싼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아싼은 이스탄불의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10살 때 처음 사부님을 따라다니면서 옷 만드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처음에는 딱딱한 골무를 중지 손가락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고정시켜놓고 바늘을 슬 밀어넣는 동작을 몸에 배도록 했다고 한다. 오로지 옷만 만들어 온 그들의 40년, 50년의 인생을 비교하면 겨우 대학교를 입학해서야 옷을 배우고, 업계에 몸담아 왔던 시간들 마저도 참 작아져 보였다.     


2.

한국에서 온 팥이다. 적두라고 적혀있었고, 프랑스에서 보던 강낭콩처럼 생긴 팥의 모양이 익숙해져서 원래부터 내가 알던 팥의 모양이 저렇게 생겼는지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한국의 진짜 팥으로 모모코의 아주키레시피를 따라 단팥을 새로 만들어놨다. 프랑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잼인 밤크림을 눈에 보일때마다 사모으다보니 여러 브랜드의 제품들이 집에 쌓였다. 식료품점에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밤크림을 눈여겨보다가 리옹보다 더 남쪽에 있는 Ardèche라는 지역에서 나오는 밤이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연인인 프레데릭이 아르데쉬에 사는데 피에르의 엄마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공주밤이 유명한 것과 비슷하다고 떠올려보면 재미있기도 했다. 인터넷에 더 찾아보니 수확철에는 무려 밤축제가 열렸다. 올 가을에는 내가 좋아하는 밤을 잔뜩사러 아르데쉬에 갈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봉제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초상화를 찍은 사진전. 사진자체보다는 작업과정을 설명해놓은 영상물이 더 좋았다. 알록달록한 사리와 장신구로 치장한 봉제사들의 아름다운 모습들, 베트남에서 본 익숙한 의류공장들의 하얗고 텅 빈 분위기.  

 

 

파리의 지독한 산책자로써 여기저기 굉장히 많이 걸어다녀봤지만 이렇게 납작한 원형으로 파인 문은 처음봤다.

3.

거실에 둘 테이블을 사던 날.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던 벼룩시장을 눈여겨놨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에 다시 오게 된다. 큰 가구를 살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나 바로 마음에 들 테이블을 살 수 있을지는 몰랐다. 50년대의 영국산 부드러운 컬러의 나무로 된, 양쪽으로 접히는 테이블이다. 15분간 예약을 해놓고 한바퀴 돌면서 조금 더 고민하는동안 아주머니는 기름칠을 더 해놓았다고 했다. 구매를 결정하고 현금인출기를 찾아서 돈을 뽑아오는 동안에는 포장이 다 되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가려고 했으나 예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서 우버를 불러 피에르만 혼자 테이블을 가지고 집에 돌아갔고 나는 더 벼룩시장을 둘러보다가 아프리카 장바구니도 사고 쥬얼리도 더 샀다. 오후 2시에 맞춰서 샹젤리제까지 피팅시간에 딱 맞춰서 출근을 했다.     

샹젤리제대로에는 공사가림막을 근사하게 해둔 브랜드들이 많다. 요즘은 리바이스가 한창인데 허리벨트나 리벳의 윤곽을 살려서 입체감 있게 만들어 둔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내리면 꼭 지나는 골목인데 가까이에서 봐도 신기하다.    
매일아침의 신문. 르몽드나 레코에 비해서 훨씬 읽기쉬운 신문인 파리지앵이다. 대신엔 일주일에 한번, 퇴근하고 각잡고 스타벅스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날이면 르몽드매거진이나 레코에 실린 사설들을 읽었다. 몇 주 전쯤엔 새로운 스케치없이 디자이너 미팅을 기다리던 한가했던 일주일 동안엔 회사에서 동료들과 수다만 떨다가 온 적도 있다. 그 틈에 한국에서 소중히 스캔받은 자료물도 프린트도 했고.      

 

 

4.

단연코 파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액티비티인 벼룩시장. 1월에도 주말마다 다른 볼일이 있는 동선에 맞춰서 시장을 하나 돌아서 가곤 했다.   

테이블 아래 숨어있는 고양이/ 중국스타일 장농의 한가운데에 넣어놓은 곰돌이인형
나의 사랑스러운 일로나. 헌 물건은 싫다고 했으나 내 손에 이끌려나와 쥬얼리도 사고 문진으로 쓸 무게추도 샀다. 하나는 내 가방에 넣어뒀다가 잊어버리고 우리집까지 가져오게 됬지만.


토요일의 아침에 시장에 다녀올때 요긴하게 쓰이는 아프리카 전통 바구니. 구매할때 바구니별로 컬러와 무늬가 다양해서 한참을 고민했다. 하필 고심해서 내가 고른 바구니의 모양이 찌그러져 있다고 아쉬워하자 판매하던 흑인 남자가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리고 조물조물 모양을 잡더니 동그랗게 만들어줬다. 저렇게 커다랗고, 튼튼하고, 손으로 직접짜서 만든 바구니가 20유로밖에 안한다니.    

 


어느 토요일 오전엔 이케아에서 주문한 서랍장이 도착했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삿짐박스를 치우고 옷을 정리해서 넣었다. 나중에 시내에서 손잡이만 새로 사서 바꿀 계획이다. 서랍장보다 더 늦게 올 줄 알았던 침대 프레임은 며칠만에 도착해서 침대위에 매트리스를 놓았다. 오랫동안 무인양품에서 찜해놓았던 짙은 호두나무컬러의 심플한 프레임이 있었는데 더이상 프랑스에선 판매를 안해서 다른 것으로 골랐다.
타일이 쌓여있는 부엌. '2017년도에는 방콕에 있었네' 라는 기억을 환기시키던 오랜만에 꺼낸 에코백. 17년도엔 방콕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뜬금없이 참 괜찮은 인생인 것도 같았다. 앞으로는 공연이나 이벤트에 갔을 때엔 기념으로 천가방을 좀 더 자주 사야겠다. 이렇게 햇수는 빨리 바뀌고, 과거의 나는 대륙도 다른, 어느 공간에 있었다고 기억하게 만드는 물건들은 낭만적이니까. 서랍장을 정리하면서 파리의 지하철에서 핸드백으로는 쓰기에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아름다운 포르투갈의 전통 가방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게 되는 것.  

 


볼 만큼 봤지만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한번 더 볼까 싶었던 페스트라이브즈. 1시 45분에 시작하는 상영타임을 1시 30분에 조그마한 극장을 지나가면서 발견하고 극장 안으로 발결음을 향했다. 지나가며 항상 궁금했지만 처음으로 들어가 본 곳이다. 노라가 캐나다에 이민을 갔을 때 느꼈을 청소년기의 외로움이 캐나다의 학교 담장에 혼자 서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겨우 1분도 안나오는데 이번에 봤을 땐 그게 인상에 오래 남았다. 

 

영화관에서 나와, 공원 앞 길거리에서 중고책을 팔던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더 정확히는 나에게 있던 Rachel Cusk의  Coventry 책의 폰트가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불어로는 번역되지 않았을건데.. 하면서 가까이 다가갔고, 그녀와 결이 비슷한 가벼운 에세이류의 영미권 신간들이 우수수 꽂혀있었다. 영화포스터나 책 겉표지처럼 시각적인 요소인 컬러와 폰트는 항상 기억에 오래남거나 자극이 더 되는 것 같다. 옆에 있던 흔한 프랑스책처럼 이 귀한 영어책들도 동일하게 2유로에 팔던 아저씨에게 책의 정보도 제대로 모른채로 4권이나 구매했다.    
동료 중에 조셉에서 셰프로 오래 일했던 베네딕트가 직원세일의 링크를 공유해줬다. 조셉 아뜰리에는 생마르탱 운하 근처에 있었고 다른 샘플세일때도 그랬지만 고급스러운 니트류를 주로 샀다. 니트로 된 핀스트라이프 무늬의 트렌치가 있었는데 행거에 걸려있을 땐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메리노울이라고 적혀있어서 한번 입어봤고 부드럽게 감기면서도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 어쩐지 좋았다. 사이즈는 M이라고 쓰여있지만 전혀 상관은 없었고, 동일한 세가지 모델이 있었는데 샘플 단계의 옷이라서 세 피스의 기장도 달랐고 칼라를 달때 봉제마감의 방식도 달랐고, 심지어는 단추의 위치나 종류까지도 은근히 달랐다. 이 다양한 차이점들을 취합해서 가장 맘에드는 것으로 하나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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