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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lives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3. 11. 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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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요일에 극장에서 본 Shinji Somai 감독의 déménagement. 일요일엔 집에서 꼼짝않고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봤다. (셀린 송 감독의 Past lives, Playlist- 프랑스. 2021, 더 테이블- 한국영화: 옴니버스로 커피테이블을 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형식) 

 

Past lives는 프랑스에는 개봉을 하지 않았지만 올해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피에르와 통화를 하면서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봤는지 이름을 대지 못할 정도로 스쳐간 영화도 있지만 Past lives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영화도 있다. 지하철을 타러 어두운 아침에 집 밖에 나서면서, 잠깐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에 몇 번씩도 이 영화를 생각했다. 공휴일인 오늘 아침에도 침대에서 이 영화 생각이나서 영상들과 인터뷰, 기사들도 더 찾아봤다. 바에서 현재 미국인 남편과 첫사랑 혜성을 두고 사이에서 나오는 첫 씬이 감독이 실제로 겪었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시작이었다는 것,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인 남편과 혜성이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만나는 장면도 각 배우가 정말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게 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것. 아역 배우를 캐스팅할 때 남자어린이 셋을 나영과 케미를 보기 위해서 연기를 시켰고 극중에 나오게 된 아이는 어린 배우 나영이를 엉엉 울게 만들고, "나 정말 미국에 가야되요?"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순수하게 슬픈 감정을 전달해 줬다는 아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 초반부에 나영(노라)가 미국에 이민가서 12년 후 처음으로 혜성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부터 눈물이 났다. 미국에 와서는 울지 않아, 내가 울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 이라고 덤덤하게 혜성에게 말하는.

 

이 영화는 뉴욕에서 찍었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시리즈 속의 파리의 센강 근처에서 두 사람이 거닐고 배를 타는 모습과 풍경이 많이 닮았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 반대편에서 뉴욕이 보이는 강 앞의 회전목마 앞, 메디슨 스퀘어 파크,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가는 장소 등. 두 사람이 살짝 떨어져 걸으며 긴장과 설렘이 느껴지는 감정까지도.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 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떠난지 7년이 된 나에게는 이민이라는 소재도 이 영화에 깊이 빠져드는데 큰 몫을 했다. "어차피 나랑 한국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랑 너밖에 없어" 라는 노라의 대사도, "너니까 먼 곳까지 떠난거야"라는 혜성의 대사도. 24년 만에 만난 첫사랑 앞에서 크게 동요되지만 뉴욕에서의 삶을 혼자 일궈나간 노라의 야심이나 그 어떤 최선의 속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이 방향으로 달리는 인생은 요동치는 엔진같아서, 너무 멀리까지 와서 멈출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쉽게 쓰러지지도 못하는. 

 

이스트빌리지의 플랫 입구에 내려와 혜성의 우버를 기다리는 아쉬운 순간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서로의 얼굴만 정면으로 지긋이 바라보던, 혜성을 떠나보내고 남편에게 안겨서 노라가 어린아이처럼 우는 마지막 장면이 계속 남는다. 이 Arthur라는 미국인 남편은 영화 중반에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작가캠프에서 우리가 솔로니까 만났고, 둘 다 뉴욕에 살다보니 동거도 한거고, 그린카드때문에 결혼도 한건데 내가 아닌 누구라도 될 수 있는거 아니냐 묻는다. 하지만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한 그는 노라와 혜성과의 만남이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기다려준다. 찾아보니 프랑스에서는 12월에 극장 개봉을 하는데 스크린으로 다시 볼 생각만해도 좋다. 극장에서 두 세번을 더 봐도 눈물은 여전히 날 것 같다.             

 

 


 

 

2.

13구에서 벼룩시장. 창문앞에 냄비들을 걸어놓은 모습, 우리집에 걸어놓기엔 너무 정신없는 모빌이지만 멕시코나 페루처럼 라틴아메리카,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온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뱃놀이 사공의 모빌.

 

아름다운 지하철 입구 중심균형이 위로 향한 M의 글자가 매력적이다.


 

 

 

3.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프랑스영화 세편. 가장 덜 대중적일 영화지만 Le Ravissement이 제일 감동적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늦은밤 귀가하는 발걸음, 낯선 곳에서 밀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등. 어쩐지 위로가 되는 리디아의 슬픈 표정들.   


4.

전 직장동료에서 친구가 되어 따로 만나게된 데보라. 일부러 아기도 데리고 오라해서 대화도 나누고 아기도 봤다. 뭐 먹고싶은지 물었더니 그런건 전혀 상관 없고 유모차가 들어가는 넓은 브라스리의 주소를 보내준 데보라. 아기가 5개월 만에 무럭무럭 자라서 얼굴이 달라진 모습을 보니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시계에 비해서 시간이 훨씬 물성이 있는, 강력한 것처럼 느껴진다. 요새는 손에 쥐고 잡아당기는 본능이 강해서 이 날도 양말을 신켜놓으면 계속 자기가 당겨서 벗겼다.        



겨울타임으로 된 저번주 주말. 해가 일찍져서 18시부터는 정각마다 사진 속 창문에 비치는 에펠탑이 빛이 났다. 뻐꾸기 시계처럼 정각을 알 수 있는 우리만의 시계.
올 가을,겨울에 신을 전혀 다른 두 스타일의 신발. 마시모두띠의 심플하고 넓은 부츠와 디올의 반짝이는 재질에 큐빅까지 달려있는 워커. 

 

 


 

가을의 나뭇잎 무늬

모든 것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오직 깨달음만이 그렇지 않다, 하고 고전 주해자는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더욱 깊이 깨달아서, 그 깨달음을 통하여 꽃다발과 화환을 엮자. 언젠가는 시들어 버릴, 우리들 깨달음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빛의 화환을.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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