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라꾸노치

甛蜜蜜/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by Simon_ 2023. 10. 22. 19:51

본문

728x90
반응형

1.

아침에 출근 전에 항상 가는 카페가 이제는 정해졌다. 9시의 딱 3분 전에 카페에서 나와도 늦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 가져간 책을 읽다가 집중이 잘 안되면 바에 놓여진 그날의 신문기사 몇 개를 훑어보기도 했다. 휴대폰으로 읽는 기사보다도 꼼꼼히 읽다보니까 모르는 단어들도 더 눈에 띄었고, 적어놓고 나중에 찾기로 미루기보다도 그 자리에서 찾는 방식으로 언어학습방법을 바꿔보았다. 카페에 도착하면 러시아인인 젊은 여자서버가 반겨준다.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오늘도 수고해, 라는 격려를 서로 해주며 헤어진다. 동유럽국가 여자들 특유의 큰 목소리와 직설적인 말투가 차갑게 다가왔지만 그래서인지 속내를 감추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 비해서 반대로 더 따뜻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배고프다며 마들렌을 꺼내면서 나에게도 먹으라고 커피잔 옆에 올려두기도 했고, 가게의 문을 열 때에도 춥지 않은지 신경을 써준다.

컬렉션동안 밤에만 출근한 다른 메종의 봉제사 중에서도 여러 인종들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세르비아 아주머니 두 명과 일주일만에 친해졌다. 세르비아 사람들과 아뜰리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새벽 한시에 택시를 타고 헤어지면서 '라꾸노치!'라는 인사 정도쯤이야. 태국어를 몇 마디씩하면서 유일한 태국인인 봉제사와도 가까워졌는데 결국엔 질투와 시기가 많은 내 나이 또래의 프랑스 사람들 보다도 이민자들의 마음을 얻기가 어쩐지 더 수월했다. 차라리 프랑스사람들은 나이나 경력이 나보다 훨씬 많으면 관계를 맺기가 덜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내 자리와 이익을 돌보면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회사는 여전히 어렵다. 남의 험담이나 하는데에는 참견하고 싶지도 않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에도 입을 보태고 싶지도 않고, 그 와중에 내 상황이 불리해지지 않도록 방어도 해야하는 일이고. 내 자신에게 솔직하고 기본을 다하고 볼 일이다. 이제는 나를 잘 챙겨주는 동료인 브리짓과도 처음에는 껄끄럽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른스러운 충고도 가끔씩 해줬다. 테크닉적인 것들은 노트에 적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가슴에 남는 말들은 오래남도록 내버려뒀다. 언젠가는 피비가 무작정 그냥 미술 전시에 데려갔다는 일화를 이야기해주면서 무엇이든 많이 보고 느껴서 예술적 감수성을 확장시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피에르가 워크샵을 갔던 일주일 동안 목살을 넣어서 진하고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를 매일 저녁 먹었다.   

2.

천장에 몰딩도 붙이고 마무리가 된 첫번째 침실. 마룻바닥의 컬러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렇게 밝은컬러가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컬러를 덧칠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나무색이 오히려 더 괜찮은 것 같다. 우리에게 최대의 난제는 벽난로가 각 방마다 구석에 있었던 자리에 시멘트로 메꿔져 있던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시멘트를 깨부셨더니 그저 나무 프레임과 콘크리트 땅이 나왔고, 마루를 이어서 다시 붙이는 작업만 하면 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1940년도에 지어진 아파트에 쓰여진 마룻바닥은 2.3cm-2.5cm의 두께로 현재의 표준규격을 훨씬 넘는 두꺼운 두께의 나무였다. 피에르가 아카이브를 판매하는 여러 온라인 사이트를 뒤지는 동안에 나는 차라리 중고나라에서 사람들이 내다 파는 것을 찾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에서 공사를 하는 업체 사람들이 창고에 모아뒀다가 파는 매물들이 많았다. 파리지앵 아파트의 마룻바닥을 알아가게 되면서 무늬의 모양과 끼워맞추는 형태에 따라서 헝가리식, 영국식, 프랑스식 등으로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의 로망은 대각선으로 놓여진,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헝가리식이다. 게다가 너비도 다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6.5cm 에서 6.8cm의 너비였다. 우리집에 기존에 있던 나무조각들도 제각각의 너비였다. 끝으로 갈수록 7cm에 가까워지기도 해서 방마다 조각들을 섞어가면서 너비를 대략 맞추게 된다.

중고 사이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다들 외국인 노동자여서 그런지 답신들은 절반 정도만 이해가 되었다. 어쨌거나 객관적인 정보만 있으면 되니까. 우리 몇 cm짜리 몇 미터 제곱있어. 성격이 급한 나는 당일에 구매를 하고 싶어서 어떤 판매자와 거래가 성사될 뻔 했는데 출발하려는 찰나에 운이 좋게 다른 사람이 다섯배는 훨씬 싸게 판매하는 메시지를 받는다. 거리도 우리집에서 가까웠고. 장바구니를 끌면서 지하철을 타고 거래 장소에 도착했는데 공사장에서 일하는 폴란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다가 우리를 반겼다. 차도 없이 어떻게 가져갈껀지 달랑 장바구니만 들고 온 우리를 보고 당황해 하다가 10유로를 더 추가하면서 폴란드 사람들이 우리집까지 트럭에 실어다주게된다. 체구가 큰 백인사람들을 처음에는 러시아인이라 추측했는데 맥주를 신나게 마시고 있던 부하직원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니 폴란드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알고있던 폴란드어 '진꾸이~!'를 외치니 좋아해 주셨다. 그 이후로 부하직원은 나에게 말은 걸고 싶은데 불어는 안되고 하니까 계속 폴란드어로 말을 했다. 일본의 시골에서 일본 할머니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를 하는데도 그저 듣고 있었던 것처럼. 상대방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해도, 대화는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성립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20대 초반에 한국 회사에 다닐때는 외국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연애를 하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안 통하는 경우보다는 수월하지 않냐는 생각을 했다. 

이 부하직원의 북한남한 질문이 당연하게 이어졌는데 최근에 회사에서 터키 봉제사에게는 그냥 북한에서 왔다고 해버렸다.              

3.

기존의 사선으로 잘려나간 부위들은 다 떼어내고 이음새가 자연스럽도록 멀리까지 이어붙였다. 전동사포질을 하고 마지막 사진이 코팅까지 한 상태. 각종 화학냄새들을 없애려고 향초를 세 개나 하루종일 피웠다.

 

 

오랜만에 가본 생마르탱 운하
쿠스쿠스가 맛있는 식당. 프랑스식 정통 레스토랑을 황토색으로 전부 칠해서 모로코의 느낌을 줬고 투박한 접시에 내오지만 그 마저도 매력적인, 양고기는 먹어도 끝없이 살코기가 남았고, 프랑스나 이태리요리에는, 없는 무나 샐러리류를 넣어서 시원하게 국물을 내는 느낌이 굉장히 이국적이지만 고향의 맛을 떠오르게 한다.   

 

4.

우연히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에디트 피아프 공연 포스터를 보고 티켓을 구매해서 갔다. 지정석인줄 알고 공연 직전까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갑자기 자리 지정이 없었다는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빌레뜨 공원을 뛰어서 극장 앞까지 도착했는데, 공연 시작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서 시작하게 된다. 세 명의 여자가 노래를 부르면서 뒤에서 등장하고 한시간 반 동안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셋의 연령과 발성스타일도 다양해서 각자 주는 느낌이 다른 것도 매력적이었따. 그 유명한 라비앙호즈를 부르지도 않았고 몰랐던 음악들도 많았다. 마지막에는 경쾌한 padam 분위기의 노래들이 나오면서 마무리가 된다. 가사에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시를 듣는 것도 같았다. 파리의 다양한 극장에서 여러 공연을 봤지만 큰 기대없이 갔던 에디트 피아프 공연은 감동이 짙었다.  

     


샹젤리제구역의 좋은점, 케이마트의 김밥. 밥에 불고기나 연어를 얹은 덮밥류는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어서 사먹진 않는데, 김밥은 재료손질이 2시간이며, 같은 가격에 샌드위치를 먹는 것에 비하면 이젠 결코 비싸지 않다고 느껴졌다. 바닐라 커스타드 크림이 진한 밀퍼이.   

 

 

 

 

처음보는 메트로 사인, 9호선으로 들어가는 루즈벨트역. 트로카데로역에서 나오면 바로 정 가운데에 놓여지는 에펠탑. 

 

마시면 힘이 마구 솟아나는 기린 밀크티.. 러시아마켓에서 산 에잇세컨츠 블라우스를 입고있던 이리나. 


5.

마리옹과 일요일의 브런치. 11시에 만나서 오후내내 산책까지하다가 들어왔다. 지나가다가 눈에 들어온 미국식 식당인데 로컬에서는 DINER라는 명칭대로 팬케익에 캐주얼하게 아침으로 먹기 좋은 음식들이었다. 세트메뉴로 시켜서 아보카토 토스트와 팬케이크를 먹었다. 마리옹이 시킨 핫초콜릿이 훨씬 맛있었는데 미국에 온 느낌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하우스커피를 시켰다. 미국처럼 중간에 리필도 해줬다. 나중에 제시카에게 받은 뉴욕의 팬케이크는 여기의 4배가 넘는 사이즈였다.   

5구의 시장을 구경하고, 소화도 시킬겸 계속 걷다가 13구의 익숙한 동네까지 왔다. 벼룩시장도 같이 구경하고, 고블랑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숨겨져 있던 Eugène atget 길. 

 

 

어쩐지 모양이 남다르던 이태리브랜드의 램프. 멀리서부터 이 램프만 눈에 띄어서 왔더니 다른 램프는 깎아줘도 이건 안깎아준다고 해서 그냥 샀다.
카푸치노를 마시러 가는 카페.
서울에서 온 선물. 아름다운 핸드메이드 책갈피, 어떤 수입 스티커도 붙여지지 않고, 한국어로만 적혀있는 빼빼로도 사랑이 가득한 선물.   

 

728x90
반응형

'甛蜜蜜 >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날  (0) 2023.11.27
Past lives  (2) 2023.11.01
THE SHOW  (1) 2023.10.02
L'ARCALOD  (0) 2023.09.17
알차고 슬기롭게  (0) 2023.07.19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