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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이어 _ 지속의 순간들

甛蜜蜜/영혼의 방부제◆

by Simon_ 2023. 7. 2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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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다이어 _ 지속의 순간들

 

 

올해 4월 한국방문에서 구매해온 책이다. 원래 리스트에 있던 책은 아니고 강릉에 새로생긴 독립서점에서 여러책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인지 호주에서 사온 것인지는 기억이 흐릿한, 동일한 책의 원서가 우리집에 있었는데 THE ONGOING MOMENT라는 제목이다. 에세이라기에는 객관적으로 여러 작가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되어서 한참을 포기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면 같은 책을 여러 언어로 갖고 있는 것 쯤이야. 두께가 있어서 집에서 두고 읽으면서, 덕분에 인덱스를 붙여가면서 읽었다. 먼 곳을 여행할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였다. 아이폰으로 찍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특히 영어권 국가가 아닌 스리랑카나 태국, 베트남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건 굉장히 들뜨는 일이었다. 가끔 여행한 사진들을 다시 들춰 보면 스리랑카에서 내가 찍은 사진들이 정말 좋다.

장면들을 포착하는데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문자로 된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이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책의 어느 부분에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고 이발소는 전세계에서 다 똑같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행객 하나없는 장소에서 할일 없는 시골 마을 사람들이 저녁무렵 평상에 모여서 도란도란 선선한 바람을 쐬는 것은 몰타의 섬에서나 한국이나 다를 것도 없다. 

사진이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말에도 공감했다. 새 것과 오래된 것들이 프레임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시간의 흔적이나 때가 묻은 것들은 사물에서 드러나고, 사진은 그 사물들을 담아대는 시선이기도 하니까. 이 책을 다 읽고나니 프랑스 국내가 아닌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54165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의미심장하게 멈춰 서 있는 시각장애인은 더욱 눈에 띈다. 그는 적어도 1930년대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충격적이게도 그의 모든 것이 - 그가 입은 옷뿐 아니라 머리 모양까지도 - 그를 다른 시대의 사람, 1930년대 농업안정국 시절이나 하인과 스트랜드의 사진에 등장하는 부랑자ㅓ럼 보이게 한다. 마치 예전 사진에서 그를 오려 내 이 사진에 붙여 넣은 것만 같다. 그의 컵에 동전을 넣고 있는 여자가 여성 해방 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 말의 유행을 너무 잘 보여 주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위노그랜드의 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그는 소통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소외와 분리가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p.39

 

오래된 감자처럼 여기저기 파이고 흙냄새가 나는 얼굴 속 그의 눈은 칠흑처럼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 있다. 그래서 이 사진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느껴지는 걸까? 우리의 세상이 완전히 시각적인 만큼 그의 세상은 완전히 음악적이다. 음악이 그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면, 사진은 우리가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p.54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글들로 가득 찬 이 세상 -이탈로 칼비노

 

브라사이는 1931년 발터 벤야민이 명명한 “시각적 무의식”을 찾아다니며 잠든 도시를 배회했다. 이는 센강 위의 다리들을 찍은 브라사이의 사진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다리 위로는 거대한 파리의 대로들이 보이고 아치 아래에는 (독특한 모양으로 일그러진 반영을 만들며) 어두운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적인 안정과 -그것이 만들어낸 부작용이자 - 어긋나는 충동을 은밀히 상기시키는 부랑자들과 노숙자들이 불빛에 비쳐 희미하게 보인다. 그들이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에게 발휘하는 힘은 거의 중력에 가깝다. 이렇게 심리적인 상태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암실 용어를 쓰자면 정착시키는 것이 브라사이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도시의 풍경은 사실적인 동시에 내면적이고 객관적인 동시에 초현실적이다. p.93

 

그는 젊고 잘생겼지만, 손은 20년이나 30년 정도 더 나이 들어 보인다. (…) 이 남자가 가진 것은 그가 기대고 있는 오래된 나무와 똑같은 질감을 가진 손 뿐이다. (이 목재 덩어리는 남자의 팔 윗부분인 것처럼 보이게 기울어져 있다.) 그의 손은 -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완전히 똑같을 - 지금까지의 인생이 지나온 흙길에서 생긴 상처들로 덮여있다. 손바닥은 그가 지나가는 땅의 풍경 - 그 땅의 얼굴 -이다. 땅처럼 건조하고 강한 인내심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만큼 고될 것이라는 건 굳이 손금을 읽을 줄 몰라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그의 얼굴에 비교적 주름이 없고 손처럼 삶의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얼굴과 손의 대비가 이 사진을 낙관적으로 보게 한다. 이 사진을 비관적이고 절망적으로 보게 하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도 손과 똑같이 주름지고 거칠어지리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의 손바닥에서 읽을 수 있는 운명이다. p.102

 

누군가 목격한 대로 에번스는 “흰 장갑을 낀 채로” 빈민가를 찍었다.

골딘의 작업 속 침대는 가방, 전화기, 옷, 책, 스카치테이프, 필름과 같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침대는 더러운 갈색 바다 위에 떠 있는 주황색 구명보트가 된다. (…) 이상하게도 골딘의 침대 사진에서 느껴지는 절대적인 솔직함은 자신의 유한성의 흔적이 새겨졌던 정리 안 된 침대의 주인 유르스나르의 소설 속 하드리아누스가 지닌 진중하고 단정한 태도를 생각나게 한다. p.211

 

이 책에서 영화관에 가는 것은 더 큰 의미의 존재론적 “탐구”의 일부다. 어떤 탐구일까? “이 탐구는 자신의 삶의 일상성에 함몰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나는 마치 낯선 섬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조난자는 무엇을 할까? 그야 물론, 주변을 뒤지고 다니며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퍼시의 화자는 계속해서 마치 이글스턴의 카메라를 통해서 보듯 세상을 본다. 그는 아치에 일어나 옷을 입으며 주머니에 넣던 물건들의 수수께끼에 발이 묶인다.

그 물건들은 낯설어 보이는 동시에 단서로 가득해 보였다. 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엄지와 검지로 만든 구멍 사이로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작은 물건 더미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다른 누군가의 물건일 수도 있다. 이 물건 더미를 30년 동안 안 바라보고 한 번도 보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자신의 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이것을 보자 탐구가 가능해졌다. p.311

 

외로운 주유소를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상징적인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외로운’이란 말은 아마 불필요할 것이다. 호퍼의 그림인데 어떻게 외롭지 않겠는가? 황혼 빛으로 물든 길이 어두운 숲속으로 휘어진다. 그곳에 혼자 있는 남자가 세 개의 빨간 펌프 중 하나를 가지고 무언가 하고 있다. 오늘 밤은 이것으로 마감하려는 듯 보인다 - 이 시간에 누가 올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확실히 무슨 일이 방금 일어났거나 아니면 이제 막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호퍼의 특징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유난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다. p.314

 

이글스턴의 사진에서 시간은 부식된다. 리가 찍은 <펠릭스 C:하우스>의 상점과 주유소의 사진에서 시간은 누적된다. 리는 시간이 그 장소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지만, 그곳이 여전히 문을 열고 운영 중임을 나타내는 살므이 흔적 -튜브 없는 타이어 수리 TUBELESS TIRES REPAIRED, 정품 석유판매 STANDARD OIL DEALER - 도 충분히 보인다. 시간은 흘러가기도 하고 멈춰 있기도 하다. (…) 하지만, 노워크의 간판이 자랑스럽게 새것 새것 새것을 외쳤다면 이것저것 모여 있는 간판들은 이제 오래된 오래된 오래된 느낌을 준다. 지금 이 사진은 오래된 것과 새것, 정확히 이 둘 사이에 있다. 리가 사진을 찍은 이후 전 대륙에 걸쳐 번쩍이는 셀프 주유소가 생겨났다. 스티븐 쇼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라브레아애비뉴와 베벌리불바르의 교ㅏ에 있는 이 중 한 주유소의 사진을 찍었따. 오존이 고갈된 파란색 하늘이 셰브론 간판을 둘러싸고 있다. 프레임의 오른쪽에는 펌프와 앞마당이 보인다. 중간에는 텍사코 간판이 있다. 길을 따라 90미터만 내려가도 거의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 쇼어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담을 수 있는 대형 카메라의 특징에 어느 정도 힘입어 “무한대로 늘어나는 약국”과 같은 순간, 그 순간밖에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p.322

 

이발소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 윌리엄 클라인이 1956년 로마에서 찍은 북적거리는 바르비에르는 1933년 에번스가 아바나에서 찍은 이발소와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다. p.329

 

랭의 사진에서는 혼자 있는 사람 - 특히나 혼자 있는 사람- 마저도 의미로 당신을 가득 채운다. 그들의 얼굴에 담긴 소리없는, 멈추지 않는 증언은 당신을 밀어붙이며 애원한다. 그들에게서 벗어나 낮에 자는 사람 DAY SLEEPER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붙어 있는 문을 찍은 그녀의 사진을 보면 안심이 된다. 문에 ID라는 번호가 붙어 있고 ID로도 읽히기 쉬워, 마치 1D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identity는 오로지 그의 수면 습관에 의해 결정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명료한 메시지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전달되거나 암시되는가. 낮에 자는 사람은 지시사항 (‘방해금지’)를 전하고 은연중에 (밤에 일하는) 그들의 직업을 암시한다. 

잠을 자고 꿈을 꾸려고..   p.347

 

비어 있는 승강장, 역의 온도계, 멈춰 있는 화물 카트들, 조용한 상점들,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너머 보이는 세월에 낡은 그들이 살던 집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란 마을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그런 사진을 보며 세상이 더 안전하고 평화롭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 할 일이라고는 기찻길로 내려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게 전부던 때를 회상하곤 한다. 

 

아제는 하우스만의 도시 개발로 인해 갑자기 낡아버린 파리를 기록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그는 공간을 사진으로 찍었지만 그의 사진은 모두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원래 “보기 위한 시계”라는 바르트의 주장을 가장 포괄적으로 구현한 사진가다. 아제의 계다은 과거에서부터 올라오거나 과거 속으로 내려간다. 골목길은 시간이 흘러가는 좁은 도관이 된다. 출입구는 거의 잊혀진 기억을 얼핏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모든 것 가운데로, 접근할 수 없기에 완벽하고 정확하게 도시의 기억을 깊이 보존하고 있는 무의식의 어두운 강인 센강이 흐른다. 도시에는 지나가던 상태로 보존되어 영원히 흐려져 가는, 벽과 돌 속으로 사라지는 인물들, 환영들이 살고 있다.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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