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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xelles 1

가져온 카메라/Europe

by Simon_ 2023. 8. 10.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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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마지막 출근날에 여행을 어디로 떠날지 결정을 내렸다. 성수기인 8월에는 어느 휴양지든 사람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모로코, 알제리, 이스라엘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영어권 국가인 영국에 10일정도, 뉴욕의 몬탁처럼 근처의 바닷가까지 지나는 동선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가 비행편은 저가항공이 괜찮은 것이 있었는데 숙박비가 만만치 않아서 결국엔 다 엎어버리고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들 집에 가는 여행이 되었다. 

버스로 파리에서 벨기에까지 4시간, 벨기에에서 네덜란드의 헤이그까지 2시간,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파리까지 돌아오는 야간버스 6시간. 새벽부터 파리의 벡씨의 버스정류장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강릉의 시외버스터미널과 다름없는 익숙한 곳이 되었다. 프랑스의 여느 기차역처럼 쾌적하지도 않고, 반듯한 여성의 안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터미널이라는 증거는 오고가는 버스들, 행선지와 버스 정차위치를 알리는 전광판이면 충분한 듯 했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이른새벽에 파리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외딴 곳에 위치한 이 터미널에서 각자의 휴대폰과 도로를 번갈아 보면서 길을 찾았다. 나는 씨네마떼끄를 오가면서, 퇴근해서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면서, 이 길을 수십 번도 더 지나친 적이 있었다. 너무도 낯익은 곳에서 맞는 새벽바람의 생경한 기운. 

여행의 첫날까지도 업무 스트레스가 남아있었다. 아쉬운 것들과 불안한 마음들의 파편들이 여전히 나를 부여잡고 있었다. 브뤼셀에 도착해서 상아를 만나서 마음도 편해졌고, 도시를 구석구석 구경하기 시작하니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편안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유럽보다 북아프리카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유럽에 살아온 햇수가 늘어가면서 여느 유럽 동네끼리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과 대만, 일본이 조금씩 다른 것만큼 딱 그만큼이 달랐다. 슈퍼마켓체인도 익숙하고 브뤼셀에선 그대로 불어를 써도 지장이 없었지만 네덜란드에 갈수록 조금씩 달랐다. 풍차와 운하로 골목 사이사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끝없이 이어지던 작은 운하들. 소박한 배들이 정착해 있기도 했고, 운하를 건너는 다리의 입구 커브에는 항상 벤치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샌드위치나 감자튀김을 먹기도 했고, 노부부가 걸터 앉아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니까 수화물의 제한없이 마음껏 사고싶은 것들도 샀다. 레이든의 시내에서 마음에 들었던 식물들도 사왔고,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기 전에는 마트에 들러 땅콩잼을 샀고, 참기름병 사이즈의 작은 화이트 와인을 사마셨다.     

 

 

 


마그리트 미술관

몰랐던 사실이지만 브뤼셀에는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미술관이 있었다. 상아네 집에서 80번 버스를 타고 종점 나무르역에서 내린후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깔끔한 부티크도 몇 개 자리잡고 있고 카페도 종종 보였다. 셋째날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구글맵이 보여주는 경로를 무시하고 파리에서 7호선을 바로 타려고 조금 멀어도 걸어서 익숙한 지하철역에만 가던 것처럼. 콩코드 광장처럼 탁트인 광장을 지나 마그리트 미술관에 딱 도착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미술관건물의 창문에 마그리트의 하늘과 구름을 빼곡히 채웠는데 하늘이 맑아서 완전히 유사한 배경색이 되기도 했다. 10분마다 비가 왔다가, 멈췄다가, 햇살이 살짝 비췄다가, 새까만 먹구름이 걷혔다가 수십 번도 반복되는 브뤼셀의 날씨에 이 황금같은 햇살을 놔두고 실내에 들어가긴 아까워서 마그리트 미술관은 오후에 날이 흐리면 들어가기로 미뤘다. 

 

 

 

 

Grand place

 

프랑스에 있을 땐 와플을 찾아먹진 않았는데 첫날 브뤼셀 시내에서 사람들이 줄 서있던 테이크아웃 와플가게에서 나도 몸을 실었다. 온갖 유혹적인 토핑 사이에서 고민하다 벌써 내차례가 되었고, 결국 아무것도 넣지않은 네츄럴로, 갓 구운 리에쥬 와플을 주문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버터향과 식감의 와플은 너무 맛있었다. 크로와상보다 훨씬. 브뤼셀을 여행하는 동안엔 매일 한 번씩 먹었다. 마그리트 미술관을 뒤로하고 와플을 입에 물고 골목을 걸어다니는데 아주 작은 레이스박물관을 발견했다. 상설전으로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전시가 있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가 브뤼셀 출신이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규모도 작았고, 전시장 내부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직원이 통화를 시끄럽게하는 것조차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옷들은 커머셜한 프린팅 이외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뜰리에에서 모델들을 둘러싸고 일하고 있던 사진 속 그녀는 얼마나 세련되고 멋졌던지. 

1층에 있던 레이스박물관에는 두 가지 방법의 전통적인 수공예 레이스 짜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바느질하는 일반적인 뾰족한 바늘로 촘촘하게 레이스의 무늬를 만드는 것과 몽땅한 나무막대기를 실에 연결하고 수십개의 나무막대기를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레이스가 엮이는 것. 언젠가 안시의 산골마을 축제에서 할머니들이 이 방식으로 레이스를 만드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처음보는 신기한 광경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앞에서 구경했더랬다. 전시장의 영상도 마치 빨리감기를 한 것처럼 손이 굉장히빠르게 움직였다. 좋은 소식일 수도 슬픈 소식일 수도 있지만 어느날 기계의 발명으로 인간의 속도보다 6000배 빠르게 레이스가 짤 수 있었다고 한다.

 


 

 


 

조촐한 벼룩시장의 풍경.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경거리. 

 

 

어떤 사연인지 50유로 여러장을 한 손에서 다른쪽 손으로 넘겨가며 세고 있던 남자.


 

홍합탕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은 식당의 나무 가구들이 딱 이 장소에 맞춰서 제작되어 있었다. 가끔 이런 오래된 식당에 가게되면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나무 가구들에 은근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요즘 새로 생긴 식당에선 전혀 볼 수 없는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벽의 길이에 딱 맞춰서 짠 나무 의자들과 테이블, 바텐더가 있는 높은 테이블도. 포르투갈엔 특히 소박한 식당들에 맞춤 인테리어가 많았다. 파리에는 주로 고급식당에만 남아있다. 요즘에 유행하는 디자이너들의 제품들로 채운 인테리어보다도 훨씬 멋스럽다. 게다가 50년, 100년은 거뜬히 버틴 장식이 아닌가. 이런게 진정한 환경주의자일텐데. 그린워싱으로 가득찬 요즘의 시대에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생각보다도 더 좋았다. 특히 나무나 달이 들어간 풍경들. 밤의 풍경들.

La page blanche라는 오묘한 색깔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잎사귀들에 담긴 보름달 그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너무도 아름다운 밤하늘의 색이었다. 나중에 펠리페에게 이 작품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이 그림이 좋았다며 네덜란드의 밤하늘도 이런 빛깔을 낸다고 했다. 뮤지엄샵에서 이 그림의 포스터가 있으면 꼭 사고 싶었는데 컬러감이 전혀 달라서 도저히 같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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